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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01. 2023

엄마, 지금

극단을 가정하면 절실해지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현재가 달라진다. 이제 영원히 못 볼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면 지금이 절실해진다. 꼭 그렇게 낭떠러지에 내몰듯 끝까지 밀어붙여야 우린 놀란 눈으로 환기를 하나 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조바심을 내고 불안에 떨기보다는 현재에 좀 더 충실해 보려 한다. 그리고 당연히 우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곡해와 반목으로 형제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엄마마저 나에게 등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억울하고 답답함에  늦은 밤 혼자 길거리를 헤매다 다짐하듯 엄마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래요, 정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물러서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앞으론 엄마집에 안 올게. 돌아서는 나를 엄마가  뒤에서 보고 있다는 시선을 느꼈지만 끝내 앞만 보고 나왔다.


외면받고 단절됐던 어느 날. 길거리 시장에서 엄마랑 꼭 닮은 키 작고 허리 꾸부정한 흰 노인을 봤을 때 숨고 싶으면서도 그렇게 마음이 두근거렸음에야. 엄마가 아니었다. 그런데 다행이란 생각이 어이없이 든다. 왜 내가 외면하고 왜 나를 떠미는지 모르겠다며 미어지는 마음에도 고개를 흔들었다.


버스 타고 는 길에 언뜻 '저기 엄마구나' 하는 인도를 걷는 어떤 이를 봤을 때, 버스는 너무나도 빨리 도로를 달렸다. 순간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뒤달려 가볼까 하는 망설임이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한 번은 집 대문에 검정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메모도 없고 단서도 없다. 봉지를 뜯어보고는 엄마일 거란 확신을 했다. 콩잎 물김치. 비슷한 제품은 있어도 이 김치 국물은 살 수 있는 맛이 아니다. 눈 질끈 감고 매몰차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흘러넘치는 국물에서 퍼진 냄새는 이미 내 손등을 타고 떨어진다.


그렇게 3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이 모든 사태가 누군가의 모함이요 농간임이 밝혀졌을 때, 어쩌면 본인도 피해자이면서 한편으론 오갈 때조차 없어져 그랬는지는 몰라도 엄마는 내게 자신이 미련해서 그랬노라 사과를 한다. 몇 번을 미안 타고 하는 엄마를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다시 3년이 흘렀다. 팔십 대 중반의 엄마는 이제 오늘내일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그래서 마지막 이후의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어제의 오늘도 내일의 오늘도 매일 연락하고 만난다.  


뒤돌아 서 본 사람은 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고하지 않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떠나보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언제 떠나든 무겁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가볍게 '안녕'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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