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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06. 2023

무료

기다림이 목적인 기다림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라고 누군가 말을 하면 어떤 느낌인가?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정말 할 일을 다 마친 이에 대한 부러운 눈길도 있다.


자식 다 키우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후손들 별 탈없이 잘 살아간다. 어르신은 본인이 할 일은 거의 다 대충 끝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아왔고, 운 좋게 토지 보상받아 경제적 어려움도 없고, 주변과 일가친척들에게도 힘닿는 만큼 베풀었다. 70대 중반을 넘기면서 열심히 달리듯 살아온 생에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향해 뛰어가야 할지 방향을 잃었다. 


이것저것 해봐도 흥이 나지 않는다. "뭘 하려 해도 할 게 없네. 일 없이 몸은 이곳저곳 아프기도 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나 관심 있는 곳에 한 번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그 생각을 안 해봤겠나.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질 않아. 책을 보려고 해도 눈이 침침해서 읽기 힘들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저 두꺼운 책을 들춰보기가 겁이 나네. 저걸 언제 다 읽을까 싶기도 하고. 붓글씨도 함 해볼까 하다 놓게 되더군. 쉽지가 않아." 여러 시도를 해봐도 오래지 않아 그만둔다. 그렇게 반복되다 만다. 해도 안돼. 해봤는데 나랑 안 맞아.


바쁘지 않으면 한 번 들러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날 저녁 시간 내어 혹 노인 좋아할 음식을 하나 사들고 방문했다. 어르신은 맥주 몇 캔을 사놓고 기다린다. 특별히 할 말씀이 있으신지 물어보니 그저 긴긴밤에 한 잔 하고 싶어 불렀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긴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전에도 드문드문 들었던 얘기들인데 삶의 우여곡절이 재밌다. 또 봐. 덕분에 이렇게 하루를 때웠네.


몇 차례 더 방문이 더 있었지만, 신나던 무용담도 바닥났는지 연락이 없다. 들리는 말엔 꿈에 돌아가신 모친이 나타나더란 얘기가 있었고, 심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괜히 자식들에 대한 트집도 늘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새끼들 하는 짓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며 타박과 욕설이 는다. 


기마이 있게 돈을 써도 그때뿐. 점점 자식들과 거리가 멀어진다. 어르신은 혼자 사는 부모에게 잘 들르지도 않는다며 동네 소문낸다. 그럴수록 더 고립된다. 이젠 심심함을 넘어 외롭고 쓸쓸하다. 노인 고독사는 그렇게 오나 보다.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경제적 빈곤도 아니다. 소소한 아픔은 있어도 큰 질병도 없다. 죽음이 가까움을 절감하고, 혼자 맞아야 하는 적막에 몸서리친다.


몇 년이 더 지나면서 어르신은 찾지 않는 자식들에게 극단의 방법까지 동원한다. 수면제는 물론이고, 연탄불을 피우고, 빨랫줄도 등장한다. 나 이제 간다는 전화를 미리 돌리긴 했지만. 쓸쓸하고 슬프지만 그의 질주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할 일 없는 한가한 노인

아무 걱정도 없고

더 이상 바람도 없다

얼굴 한가득 주름 사이로 미소가 스친다

꼭 이뤄야 할 일도, 반드시 구할 것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


할 일 없기는 매 한 가지인데

의미 없는 나날이 버겁다

오늘은 또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우나

지루하게 버티듯이 지겨운 하품

그날이 그 날인 또 다른 노인이

하루를 보낸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함을 아는 이와

세상만사 그게 그거라며 삶의 의지를 꺾은 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볕 쬐는 겉 닮은 모양새에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흘러가는 강물을 담담히 바라본다. 며칠 지속 내린 비로 강물이 누렇게 탁하다. 물이 많이 불어 물소리가 거칠다. 그래도 강은 바다로 흐른다. 언제나 언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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