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워도 넉넉한
여름이 꺾이는 데는 아침저녁 서늘함으로 먼저 온도를 낮춘다. 그래도 낮더위는 아직이다. 그런 낮더위에 습기까지 가시면서 햇살이 따가워지면서 본격 가을이다. 벼이삭에 핀 꽃이 열매를 맺고, 낮의 따가운 더위에 익어간다. 걷힌 습기로 하늘은 높고 가을의 건조한 볕으로 벼는 단단하게 여문다.
먹을게 드문 시절에는 벼가 익기까지 멀고, 배고픔에 겨워 덜 익은 나락을 쪄 찐쌀을 만들어 공복을 메웠다. 지금은 간식으로도 잘 안 먹지만.
쌀을 더 여물게 하고, 탈곡한 벼나락을 바짝 말리는 고마운 햇살을 '쌀더위'라고 하더라. 꽃샘추위가 늦겨울의 봄과 꽃에 대한 부러운 시샘이라면, 쌀더위는 늦여름의 그 웅장한 기세가 베푼 건조한 여운이다. 곡식이 여물고, 과일이 익어가게 하는 관용이다.
누렇게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길가 핀 금목서 향이 짙다. 낮의 쌀더위가 쨍하게 따갑지만 넉넉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