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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16. 2023

매듭 매직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경황이 없어서 길게 말 못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히 고향으로 내려가는 중이라 연락만 한다."


친한 대학 동기가 부친상을 당했다. 사회성 떨어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동기중 발 넓은 놈에게 대충의 상황을 얘기하고 부고장 안내를 부탁다. 친구의 부친이 얼마 전 담석증으로 수술했는데 조직검사 결과로 담낭암도 발견되어 항암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를 일전에 들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끝내고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두 달 만에 돌아가셨단다.


그는 서울서 고향 남해의 어느 바닷가 병원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중이라고 한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오전 일 끝내고 바로 조문 갈 예정이다. 거리가 멀지 않아도 교통편이 너무 불편했다. 차를 몰고 가자니 그 시골길이 만만아 기차 타고 택시로 이동할 방법을 찾는다. 그래도 4시간 이상 걸리는 길이다.


연락을 받고 다른 대학 동기중 한 명도 서울서 내려왔다. 나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오래간만에 얼굴을 같이 본다. 조문을 하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친구 상주니 당연 조문 인사를 받았지만, 다른 상복을 입은 이들은 떨어져 있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침울한 상갓집에 밝은 분위기다. 살짝 웃음소리도 나고. 물론 부친의 연세가 80대 중반이었으니 호상이라면 호상이지만.


유족들 명단엔 빈칸이 많았는데 조문을 마치고 나와서 다시 명단을 확인해 보니 빈칸이 없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보다. 아니면 중간에 무슨 사연이 있나 보다. 나중 49제가 끝나고 그를 다시 만났다.


사실 25년 전 친모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였다. 새어머니는 이전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 셋을 키우고 있었다. 친구는 엄마를 잊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재혼을 기꺼워하지 않았지만 어른의 결정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하기엔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만한 권한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명절에 가서 아버지를 뵐 때 새어머니에게도 같이 인사를 드렸지만, 어색함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서울서 자주 내려갈 수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건 시간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보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성이 다른 형제들도 성인이 된다. 


돌아가시기 1-2주 전까지만 해도 그러다 회복해서 좋아지시려니 했던 친구 아버지는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다. 빨리 회복하고픈 마음에 식사량 조절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 같다는 친구의 뒷얘기다.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남겨진 일들은 평소 부친의 생각대도 정리를 하시는 중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겨진 많은 일들은 순간 그대로 정지되었다. 


어느 집안에나 있는 유산 상속에 대한 소란.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시끄럽다. 특히 그 옆에 같이 사는 이들의 주장이 날카롭다. 남겨진 일들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물었다. 세세하게 나누자면 끝이 없는 게 상속 논란이다. 심지어 누가 더 고생했느냐며 문제 제기를 한다면 한참 돌아가게 된다. 


친구는 간단하게 해결했다고 한다. 동산과 부동산으로 나눠 정리했단다. 현금과 연금 등등의 부분과 아버지가 사시던 촌집. 다행히 큰 불만이 없었던가 보다. 누나들이나 네 집사람도 동의했냐고 다시 물었다. 친구는 본인이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부탁한다고 형제들에게 고개 숙였단다. 새어머니 쪽에도 불만이 없었던가 보다. 


세상 가장 치사하고 피터지게 격렬한 싸움이 '집안싸움'이다. 속속들이 아는 데다 그 이권에 대한 욕심에 너나없는 다툼. 숱한 법정 다툼으로 온갖 정까지 뚝 떨어지는 일들이 흔하다. 남는 것 하나 없이. 친구의 결정이 얼마나 현명한 해결인지는 별 문제다. 아니 그건 무의미하다. 망자에 대한 생각에서 이래저래 속상함이야 어쩔 수 없어도 감정의 손상까지 가지 않았고, 가장 중요하게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 자칫 복잡해져 꼬일 수 있는 매듭을 그는 그렇게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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