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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Oct 23. 2023

장을 나누다

된장 고추장은 음식의 베이스

어떤 사정에 의해 집 나와

엄마가 제일 아쉬워한 게

장독에 가득 찬 장을 두고 온 일이었다

급히 몸을 빼느라 챙길 틈이 없었다


묵은 된장 고추장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아이고 도대체 먹을 게 없네

입 맛이 안 맞아 먹을 수 없네

늙은이의 구미를 마냥 탓할 순 없었다

입맛에 안 맞는 건 아무리 배고파도 잘 넘어가지 않음을


새로 마련한 거쳐엔 아무것도 없다

빈 장독을 구해오란다

새것보다 묵은 것일수록 좋고

큰 독이 아니라도 니 구해오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묵은 장독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여차여차 구해서 몇 개를 들고 오면

낙점을 받기도 하고 퇴짜를 놓기도 한다

눈에 딱 드는 독을 얻어서는

고놈 참 좋네, 예쁘네, 참하네

연신 매만지고 씻기고 말리고 아낀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다

물이 다르고 방식이 달라

안주인의 미각에 맞춰 이어져

약간의 묘한 차이가 특징이다


안주인의 손맛이 그대로 남아

씨간장 씨된장은 세월이 없다

향이 그대로 이어진다


장을 퍼준다는 건

그 집안의 밥상 민낯을 보여주는 거다

속사정 같은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나눔에 의미를 두지 않고는 쉽지 않다

장맛이 좋다며 좀 떼 달라고 해도 부탁해도

그냥 하는 소리려니 싶어 선뜻 건네기 어렵다


이번엔 내가 넌 빈통을 내민다

기꺼이 담아내던 할멈 순간 손이 멈춘

일전에 준 것 벌써 다 먹었나? 뭐 하려고?

시침 뚝하고, 엄마 그냥 담아줘 봐 

해서 주변에 조금씩 나눈다. 내가 생색내려고


김장철이 다가온다

절인 배추의 기와

젓갈의 다양함이 속을 정한다

묵은 세월은 참 깊다, 그 맛이

오랜 이들도 참 좋다, 그 사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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