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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02. 2022

침 소란

먼저 스스로 행하다

원장이 아프면 누가 치료하나? 침놓는 기술이야 본인이 잘 알 테고 그런 기술을 가졌다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아프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그야 제가 제 몸에 침놓죠. 한참을 얘기하다 문득

처음 침을 잡 일이 생각다.


침과 관련 학문은 경락의 흐름과 혈자리를 연구하는 경혈학과 그 혈자리 임상에 응용하는 침구학으로 나뉜다. 본과 올라가서 처음 혈자리를 배우고 취혈 방법을 찾아 손끝에 감각을 세운다. 바늘처럼 뾰족한 침에는 침병이라는 손잡이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일단은 침을 잡은 손가락의 힘을 키우는 연습을 한다. 내 방식은 이러했다. 화장지에 수직으로 침놓는 연습을 하다 익숙해지면  침을 잡은 손가락의 힘을 더 키우기 위해 전화번호부 책처럼 두꺼운 것을 대상으로 연습을 하기도 한다. 혹 손가락의 힘이 균형을 잃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려고 바가지를 물 위에 거꾸로 엎어서 침으로 바로 눌러 바가지 전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연습한다. 자칫 균형을 잃으면 바가지는 뒤집어진다.


어느 경혈학 실습시간. 조교는 서로에게 직접 침을 놓게 하기 위해 2인 1조로 짝을 짓도록 했다. 일순간 강의실은 두려움에 술렁이고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어떤 조는 아플 것 같다고 무섭다고 도망가고 그 짝은 침 한번 놔보자고 쫓기도 하고, 서로 마주 앉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짝, 잘못하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고 고함을 치는 조 등등.  


우리 몸에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을 따라 경락이라는 통로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따라 주요 혈자리가 정해진다. 자리는 말 그대로 구멍穴처럼 비어있어 기운이 쉬 머무는 곳이다. 근육끼리 서로 만나 교차하는 곳이나, 관절과 인대 사이 또는 관절 사이를 잘 촉진해보면 묘하게 빈 곳들이 드러난다. 그런 곳에 경락의 흐름과 연계되는 빈자리가 혈이 된다.


오늘은 기본이 되는 혈자리 중 하나로 족삼리 혈이 대상이다. 먼 정확한 혈자리를 는 취혈 연습을 한다. 익숙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혈자리. 게 중 노련한 학생도 있어 나름의 골도법에 따라 정교하게 취혈 하여 침을 놓기도 한다. 대부분은 처음이라 침을 놓는 쪽이나 침을 맞아보는 쪽이나 두렵기는 매한가지다. 만약 네가 아프게 침을 놓으면 나도 가만 안 둔다는 심정으로 처음 침놓는 짝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참 살 떨리고 손 떨리는 순간이다. 그것도 바늘처럼 생긴 침으로 찌르기라.


그렇게 세심하게 열심히 혈자리를 찾아 툭! 하고 침을 놓고는 깊게 자입한다. 득기得氣가 돼야 침의 효과가 있다는 수업시간의 내용들을 떠올리며 침을 놓는다. 무릎에서 발등까지 묵직하고 저린 느낌이 뻗친다. 으윽 왔다 왔어. 이제 그만. 침을 빼라고 해도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는 그렇게 놓인 침에 침병을 잡고 흔들고 돌린다. 얼마 전 배운 보사법에 따라 나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법들을 시행한다. 침감을 더욱 늘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용이 하늘을 날고, 산에 화산이 폭발하고, 호랑이가 뛰어다니는 등등의 침 수기법들이 무협지처럼 난무한다. 아악 더욱 뻐근하고 묵직한 느낌의 침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빨리 빼라는 성화에 히죽 웃으며 놀리면서 발침을 한다. 두고 보자며 씩씩거리며 , 이번엔 내 차례다.


그렇게 서로에게 침을 놓기를 몇 번 한 뒤 조교는 이번에는 각자 자기 손에 직접 침을 놓으란다. 다시 탄성의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합곡혈 자리다. 친구의 몸에 침놓 때 보다 더 긴장이 된다. 내가 내손으로 내 몸에 침을 놓기란 상대에게 시침할 때보다 더 떨린다. 혹 잘못 자입하여 멍이 들어도 자기를 탓할 수밖에 없는 기괴한 행위들이 벌어진다. 이 몸 내 것 아니라고 최면이라도 걸야 침놓기가 좀 수월하다. 애착을 가질수록 더욱 주저하게만 된다. 그렇게 침과 익숙해진다.


침의 종류도 많지만, 침법 또한 여러 가지다. 갖가지 침법을 사용하면서 임상에선 각자 자기에 맞는 침법을 찾아 선별된 나름의 몇 가지 침법 군을 운용하게 된다. 최근에도 여전히 새로운 침법들이 소개되기도 하고, 예전 침법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여 침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환자들은 정작 아픈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왜 침을 놓느냐고, 또는 좌측이 아픈데 우측에 침을 놓느냐고 묻는다. 상황에 따라 아픈 곳에 침을 놓는 근위 취혈법을 쓰기도 하고, 경락의 흐름에 따른 원위 취혈법을 쓰기도 한다. 상병 하치 법이나 좌병우치 법, 거자법, 무자법 등 다양한 원위취혈법이 있다. 그 외에도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사암침, 오행침 또는 체질침 등의 침법들도 있다.


침이라는 단 도구를 쓰는데도 그 방법이나 적응증들은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결국 침술이란 뾰족한 자극을 벗어나지 않는다. 날카로운 놈이라서 뚫는 게 그 작용이니, 기운을 소통함이 목적이라. 즉 기운이 소통이 안되어 정체되거나 막히면 발생하는 통증을 침으로 순환시켜 낫게 한다. 침이 진통제도 아니지만, 침으로 진통을 시키는 것도 아니.  환자기운 흐름을 조절하 끔 침으로 돕는 게 더 목적이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통증이 경감되는 현장에서 침술은 아직도 내겐 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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