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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05. 2022

맥脈의 단상

살아있음의 미세한 움직임

21세기 첨단 진단기계의 컬러풀한 비주얼 시대맥으로 진단을 한다고? 그게 가능해? 겨우 손끝의 감각으로 어디에 병이 있는지 안다고? 아무리 봐도 쇼 같다. 세무민이 아니고서야 그게  어찌 가능하냐고. 객관화할 수도 없고, 개인적 판단을 근거로 어떠니 저떠니 말을 하니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신비주의를 가장한 상술이 아니고서야. 점쟁이도 아니고 근거가 뭐냐고. 이러한 말들은 맥에 대한 소개가 없어 빚어진 오해인 듯하다. 물론 나도 아직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맨날 손 잡는 일을 하고 있으니 곡해를 조금이라도 풀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맥으로 진단의 근거를 삼는 한의학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은 맥에 대한 환상과 드라마 등에서 보인 과장된 측면에서 기인한 것 같다. 한의학적 진단은 망문문절을 기본으로 한다. 望-얼굴의 색이나 동작 등 겉으로 드러난 부분을 관찰하여 진단 근거로 삼는데 검고 붉고 흰 피부 색깔뿐 아니라 피부의 윤택까지 살피는 방법. 聞-목소리가 카랑카랑하거나 둔탁함 등의 관찰뿐 아니라 숨소리 또는 냄새 등의 관찰. 問-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불편한지 등의 문답 대화. 切- 맥을 보거나 촉진하여 만져봐서 피부 거친 정도 및 딱딱하거나 무기력한 탄력성 등의 관찰. 이 4가지 四診을 통합해서 진단의 근거로 삼데, 그중의 하나로 맥진이 들어간다.


예전 스승과 제자 간의 도제식 수업이 아니라면 그 미세한 차이를 전수받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우리 몸의 맥동이 잘 느껴지는 부위는 목(인영맥), 손목(기구맥), 발등(태충맥) 등 여러 부위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손목의 엄지 측 요골동맥 부위를 진맥의 부위로 정해서 맥을 잡는데, 혈자리로는 수태음폐경의 태연혈 위치에 해당한다.


처음 난경難經이란 책에서 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전해지다가 후대에 왕숙화에 의해 맥결脈訣이란 책으로 집대성?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맥결에서는 맥을 28개로 구분하고 있다. 28 맥의 각각의  맥이 어떤 모양 인지 어떤 상태인지로 나눠 설명하였으나 내용은 막연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활맥, 대파를 손으로 쥐었을 때 느껴지는 탄성이 더 세게 누르면 허공처럼 빈 듯 느껴지는 규맥 등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직접 잡아보고 서로 맞춰보지 않는 이상 맥상을 비유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해주기 참 곤란할 듯하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자기 손목에서 맥을 보는 연습을 한다. 밥 먹고 나서 맥을 잡아보거나 화장실 가기 전과 후의 맥상 변화, 화가 났을 때, 술을 마셨을 때, 머리가 아플 때 등등이다. 그러나 건강하다면 그 미묘한 맥의 변화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억지로 소변을 참고서 본인의 맥을 잡아 보기도 하고, 힘껏 달리기를 한 후에 맥을 살펴보기도 한다. 그런 약간의 극단 같은 상황에선 확실히 맥의 변화를 감지가 수월하다.


가끔은 양방의 맥박 pulse와 어떻게 다른지 묻는다. 그건 단순히 1분간 심장이 뛰는 박동수를 요골동맥을 통해 횟수를 측정하는 것이고, 한의학의 맥은 동맥의 맥박뿐 아니라 그 맥의 뛰는 위치와 모양을 취상 하여 훨씬 더 다양한 유추를 통해 몸의 상태를 파악하려 하는 차이가 있다.


굳이 pulse와 비교하자면 동맥의 박동수는 1분에 70~80회 정도면 정상의 범위로 정하고 그 회수를 기록하는 걸로 마친다. 호흡수는 따로 측정하지는 않으나 일반적 호흡수는 1분에 약 15회 내외로 본다. 한의학에서는 원래  1분이라는 시간적 개념도 없었고, 맥박의 회수를 측정함에도 기운의 대표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는 호흡에 맞춰 측정했다. 즉, 호흡수에 의지하여 환자의 맥박수를 잰다. 즉 한 번의 호呼와 한 번의 흡吸하는 사이의 1회 호흡에 맥이 다섯 번 뛰는 것으로 기준을 삼아 정상 맥(五脈)으로 보았다. 한 번의 호흡에 6-7회의 맥박이거나 3-4회의 박동은 문제가 있는 병맥으로 여겼다.


근데 여기서 좀 의아했던 게 환자의 호흡이 아닌 의사의 1회 호흡을 기준으로 삼아 측정했다는 것이다. 곧 의사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진맥이 가능한 것이다. 심리적 흥분 상태 거나, 멀리서 금방 도착하여 피로하거나, 추위나 더위에 지쳐 있다면 그 의사는 진맥을 하기 이전에 본인이 먼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의사가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는 준비가 선행된 후에야 맥을 잡아도 제대로인 것이다.


맥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맥은 생기의 움직임이다. 심장의 박동으로 동맥 혈관에 혈액이 순환되어 맥이 뛴다고 본다면, 맥박을 단순히 피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맥은 혈관 속 혈액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라 기운의 활동 양상을 관찰함이 목적이다. 한의학에선 얼마나 기운을 중시하는지는 치료에 있어서도 단연 우선시했다. 심지어 빈혈 같은 혈액부족의 혈허 상황에서도 기운의 순환을 더 우선시한다. 먼저 혈액을 돌릴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보혈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단순 혈액 보충만으론  부족하다. 그래서 기행 즉 혈행氣行卽血行이란 말이 있다. 런 기운의 상태를 맥으로 판단하는데, 많은 맥상이 있지만 간단하게는 부침 지삭浮沈遲數을 기본으로 한다.


맥의 부침浮沈은 기운의 뜨고 가라앉음이다. 두 가지의 진맥 방법이 있는데, 우선 진맥을 함에 표피에서 느껴지면 浮脈이라고 진단하고, 꽉 눌러 뼈에 가까이에서 맥이 느껴지면 沈脈이라고 진단한다. 또는 맥을 잡고 눌렀다가 손에 힘을 서서히 빼면서 맥상이 느껴지면 浮脈, 반대로 손에 힘을 주어 깊이 누를수록 강하게 맥이 느껴지면 沈脈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한 부침으로 인체의 상하를 유추하여 몸 상태나 질병의 여부를 관찰하는 것이다.


부맥은 인체의 상부와 서로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맥이 위로 뜨는 부맥에서는 실제 인체의 위쪽으로 뭔가 쏠리거나 위쪽에 기운이 나타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인체 상부는 가슴 위쪽에 해당하니 목 어깨나 머리 쪽으로 볼 수도 있고, 피부로 볼 수도 있으며, 인체의 오장 중 상부 쪽에 있는 심폐를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질병의 원인을 부맥으로 따지기도 하는데, 내상이 아닌 감기처럼 외감으로 몸이 아플 때 부맥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또는 뜨는 기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화가 난다든지, 열이 위로 뜬다든지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浮脈을 관찰할 수 있다.


반대로 침맥은 인체의 하부와 관련이 많다고 본다. 인체의 하부인 肝이나 腎과 관련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자궁이나 생리통 같은 류 또는 대소변의 불편함, 허리 무릎의 통증 등과도 연결된다고 본다. 또는 몸 차가운 습기가 아래 몰려있거나 기운의 가라앉음 등도 침맥에서 자주 나타나고, 기운이 쳐 우울한 감정에서도 침맥이 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런 부침의 맥과 그 호소하는 증상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 그땐 그 원인을 더 깊이 물어봐야 하고, 단순히 호소하는 증상의 부위뿐만 아니라 칠정 같은 감정 정서도 살펴야 하고, 기본 성격이나 가정환경의 영향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즉 복잡하고 속 깊은 사연이 있을 수 있다.


지삭 맥은 맥의 느리고 빠름이다.

數脈은 맥의 박동도 빠른 것으로 뭔가 기운이 급한 것이다. 열이 나서 그럴 수도 있고, 깜짝 놀란 상태에서 삭맥이 나타날 수도 있고, 조급해서 삭맥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는 속이 갑갑하거나 피로하여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삭맥이 나타난다.

遲脈은 삭맥과 상대적으로 뭔가 느리고 더딘 상황으로 기운이 쳐지거나, 지치고 나른하거나, 추워하거나, 우울하거나 의욕이 저하되는 등등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타고난 래의 서맥같은 지맥도 있으니 꼭 병맥이라고 단정 짓기는 곤란하다. 또는 증상은 같은데 다른 맥상으로 나타나는 예 많다. 단순 피로는 삭맥이 나타나지만, 피로 누적이 오래되어 사람이 많이 쳐있으면 지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외에 맥의 강약허실이 있고, 긴장도가 심할 때의 緊脈, 弦脈이 나타나기도 하고, 몸의 습담이 쌓여 滑脈이 뜨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맥상의 변화로 인체의 질병과 치료 정도를 추상하는 방법이 한의학의 유추 방식이다. 대체적인 대강을 살피는 데는 맥진 나름의 장점이 있다. 간혹 맥만으로 어떤 질병을 찾아내는 뛰어난 고수들도 있지만, 내 능력 부족으로 그런 점까지 언급할 수는 없다.


이런 방식으로 맥을 통해 진단도 하고 여기에 四診을 합하여 몸 상태를 전반적으로 관찰하게 된다. 렇게 맥진은 나름의 합리적이고 종합적 방법임에도 그걸 객관적으로 드러내려면 수치화시키고 정량화가 필요한데 그게 숙제다. 다분히 느낌으로 또는 어느 정도라는 말로 표현되는 정성적 측정이 많은 한의학의 한계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 생기의 활발함이 있는데, 누구든 그 기운을 느낄 수는 있어도 보여주려 하니 난감하다. 마치 외국인에게  어떻게 전달할지가 참 어려울 것 같은.

기의 흐름 나타내는 맥라는 용어가 생소해서 그렇지 누구나 알고 있고, 심지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나 지속되는 현상임에도 말하다 보니 곤란한 면이 있다.

그걸 말로 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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