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Apr 09. 2022

모과꽃

자생과 이식



몇 해 전 아는 모과를 보내왔다. 향기가 좋고 튼실해 보이는 열매는 표면에 배어 나온 반질거리는 기름막으로 모과를 잠 쥐도 손에서 냄새가 오래 묻었다. 모과를 자를 때 부드럽게 썰릴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나무에 달린 참외 모양의 과일이라 모과木瓜라고 한다지만 모과木果일 수도 있어 보인다. 나무 과일. 과실이긴 한데 나무처럼 단단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모과를 칼로 썰어보면 일단 칼질이 엄청 힘들다. 칼날이 안 들어간다. 칼집을 내도 반토막으로 쪼개려면 체중을 실어 눌러야 할 정도다. 씨가 얼마나 많던지. 대충 얇게 썰어 채반에 받쳐 말리느라 뒤뜰에 며칠 둔 적이 있다.


마른 모과를 수거하여 봉지에 담을 때 보니 바닥에 씨앗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진 씨앗에서 모과나무가 자랐다. 처음엔 그냥 이름 모를 잡목이 자라는가 싶었다. 한두 해 관심 없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무런 보탬도 없이, 비료는 커녕 물 한 바가지 준 적 없는데, 모과나무는 거침없이 자랐다. 숱한 씨가 바닥에 떨어져도 막상 발아한 모과나무는 두 그루였다. 


지금은 키가 5m가 넘게 컸다. 작년 십여 개의 열매가 맺었고, 올봄에도 예쁜 분홍꽃을 피웠다. 식물의 자생 과정은 놀랍다. 정말 엄청난 씨앗을 뿌리고, 그중에서 몇몇이 적당한 땅과 바람과 햇볕이 허락하는 곳에 자리 잡고, 그렇게 선택된 소수 뿌리를 내려 성장하는 것 같다.


봄날의 송화 가루 날리는 모습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 있다. 아예 노란 바람결이 흐르는 것 같다. 흙바닥까지 노랗게 물들인다. 자연은 경제적으로 가성비를  따져 아귀가 딱 맞게 요한 곳에 꼭 필요한 그만큼의 양이 내려지는 게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가능성의 씨앗을 뿌리고 적신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된다는 걸 아주 잘 안다. 그래서 선생님도 늘 그저 묵묵히 가보면 가다 보면 이른다고 하셨나 보다. 꼭 된다 아니다를 너무 애타듯 말라고.


주변 대학교에서 교내 거리 조경을 한다고 5년 이상 자란 벚나무를 길 따라 심었다. 원하는 곳에, 어느 정도 자란, 원하는 수종을 택하여 옮겨 심는 과정에서 이식한 나무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하려면 보통 3년의 세월을 본다고 한다. 3년생존하면 그 장소에 적응하여 살았다고 볼 수 있단다. 길 따라 쭉 심어진 나무 대부분 살아남았지만 게 중 몇 그루는 잎을 틔우지 못했다.


자연 발아의 경우 어떻게든 그 장소에 자리 잡는다. 자리를 잡기까지 기한을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으로 이곳저곳에 씨를 흩뿌린다. 그 씨앗으로 꼭 내년에 발아한다는 보장 없다. 묵혀 있다가 조건이 맞으면 자란다. 일단 그 환경에서 자라기 시작하면 바로 적응이다. 한편 이식된 나무는 이미 어느 정도 성숙했고 검증도 된 상태지만,  생존에 있어선 옮겨진 변화된 환경에 새로 적응하고 또 이겨내야 할 뭔가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싶다. 그곳의 땅이 허락함은 또 다른 변수인가 보다.

자연 발아하여 자란 놈은 특유의 스며듦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맥脈의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