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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12. 2022

예의 바른 간섭

어른 대접

역시 시간은 나름의 훌륭한 해법인 것 같다. 그런 일련의 일들이 있은 후 모친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이 보였다. 볼살도 약간은 오르고, 무엇보다 잦았던 한 숨 내뱉는 횟수가 덜 해졌다.

처음엔 서울에서의 일에 대해 침묵으로 답하다 눈물만 짓더니, 이젠 가끔씩 그때의 일들에 대해 나름 담담하게 떠올리는 걸 보니 서울에서 겪은 차가운 몸살에서 회복의 기미가 있는 듯했다.


마침 생일이기도 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오래간만에 바다도 보고 대게를 맛본 지 오래라고 해서 해안가 회집을 물색하여 한 곳을 예약했다. 집사람과 함께 차를 타고 엄마를 모시러 집 근처 도착해서 내려오라고 전화하니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있던 터라 바로 동행을 할 수 있었다. 약간 들뜬 모습이라 기분이 좋았다.


차 안에서 대뜸 엄마는 며느리에게 묻는다. "그래, 안사돈은 좀 어떠시나?"  1년 넘게 파킨슨에 치매, 뇌졸중으로 입원하고 계신 장모님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안부 인사겸 비슷한 연배로서의 염려였으리라. "네, 그냥 그래요. 낫는 병이 아니라서 더 그러네요." 재활 치료를 겸하여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계시지만, 노화에 더구나 뇌 쪽 질환이다 보니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뭘 좀 잘 드셔야 힘도 나고 빨리 나을 텐데.." 운전하면서 집사람 얼굴을 설핏 보니 뭔가 착잡해하는 모습이다. "드실 수가 없어서 튜브로 하고 있어요. 거의 눈을 감고 계시고, 뭘 물어도 가끔 의식이 좋을 때나 대답을 하는 정도예요." 의료진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상 유지가 그나마 최선이라고 할 밖에.


"에휴, 고생이 심하겠다. 본인도 그렇고 다른 가족들도 그렇고. 함 찾아가 보고 싶어도 참 그렇네."

사돈끼리의 교류도 별로 없었는데 문득 이렇게 얘기하니 동병상련이려니 했다.

" 딸들이 찾아가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때도 많고, 갔다가 그냥 엄마 얼굴만 보고 오는 경우도 많아요." 집사람은 막내딸이라 그런지 사랑을 더 많이 받아서 그런지, 지금의 병든 장모님의 수척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했다.


"저렇게 고생하느니 차라리 빨리 결정이라도 나야 편할 텐데."  순간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놀랐다. 얼마 전에도 장모님은 폐렴 증상 있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응급실 신세를 진 적 있었다. 처갓집 모두 긴장으로 떨고 있을 때, 의료 관계자는 어쩌면 코로나 감염까지 됐을 수도 있으며 연명치료 거부 확인증에 사인을 해달라며 종이를 내민 적이 있었다. 다행히 응급 상황을 넘겨 중환자실로 옮긴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엄마의 빠른 결정 얘기에 당황했다.  얼른 엄마의 말을 막았지만, 집사람은 이미 싸늘하다. 배려가 별 건가,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여 말을 가려서 하는 정도로 해도 기분이 나쁘진 않을 텐데. 덧붙여 "억만금 있으면 뭐하나, 저렇게 누워만 있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 어찌 들으면 걱정 섞인 넋두리 같지만, 듣기에 따라 묘한 비교 자거북스러울 수 있는 말이었다.


바닷가에 도착하여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비릿한 해초 냄새가 비린내와 겹치면서 탁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밑반찬이 세팅되어 있었고, 자리를 잡아 앉으니 예약한 음식이 금방 나왔다. 찜통에서 갓 나와 김이 오르는 큰 대게가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먹기 좋게 가위질이 되어있어 다리 속살이 쉽게 발라졌다. "에효, 이런 음식도 못 먹고."

 벌써 멈췄어야 하는 말들이 연민을 넘어 자랑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안타깝다는 말이 반복되면 자기 자랑이다.


아무런 손 쓸 방법이 없음을 알지만, 희망이 없다고 포기란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생사 앞에 그 누가 자유로울까. 위로의 말이 더 이상 의미 없고

예의상 하는 건조한 말들에 가해성까지 느껴질 수 있다면 그나마 침묵이어야 하는데, 너무 나갔다.

집사람은 이불을 덮고 돌아누웠다.


어제 식당에서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냐고 물었다. 모친은 내가 뭘 잘못을 했냐고 무슨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다. 이걸 어찌 얘기하나?

악의는 없어도 생각도 없는, 본인은 염려로 한 얘기에  딴지를 거는 모양새가 됐다.  원래의 말투를 가지고.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기에 인정을 할 밖에 없고, 그러려니 여겨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해도 게운치 않다.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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