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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r 29. 2022

자발적 가난 2

단순해야 단단하다

간만에 만난 무달 형님은 좀 더 수척한 얼굴이다. 아침마다 운동장을 뛰는 이유를 물었다. 처음엔 답답함에 뛰기 시작했는데, 벌써 10년 넘게 새벽에 일어나 뛴다. 스스로 맑아야 상대가 환자든 누가 됐든 내 말에 힘이 실린단다. 야외운동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지 않냐고 물으니, 비가 와도 뛰고, 바람 불어도 뛴단다. 매일 그 시간에 기상하여. 오전 5시면 겨울엔 새카만 동터기 전의 영하의 추운 어둠이고, 여름이면 벌써 먼동이 턴 시각인데 계절과 무관하게 그렇게 달린다. 전날 밤늦게 자는 날에도 기상시간은 늘 일정하다. 심지어는 여행을 가도 그 시각 주변 동네를 뛴단다. 이 정도면 강박 아닌가 싶지만 그는 그저 본인과의 약속 이행의 하나라고만한다.


경제 활동이 궁금했다. 한 달에 대충 소요되는 금액이 있는데, 유달리 환자가 좀 많이 와서 돈이 생기면 꼭 돈 나갈 일이 생긴단다. 멀쩡한 냉장고가 고장 난 다든지, 갑자기 차 수리가 필요하다든지. 반대로 돈이 필요한 때엔 예전 환자가 오래간만에 치료받으러 와서 금전적 문제를 해결해 준단다. 이 모든 걸 고려해보면 꼭 신이 있는 것 같단다. 수익이 많다고 신나거나 수입이 적어도 지나친 걱정은 않는단다. 그저 내 할 일과 해야 할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란다. 그래도 많이 벌면 좋지 않냐고 물으면, 돈 쓸 일만 많아질 뿐이라며 관심이 덜하다.


- 담벗. 그래 그건 그렇고. 요즘 소식은 어떤가?

= 어젯밤 자면서 꾼 꿈이 오늘 눈 떠보니 꿈인 줄 아는 게, 지금 현재 눈 뜨고 꾸는 꿈은 꿈인 줄은 어찌 압니까?

- 작은 꿈과 큰 꿈이 있다고 하질 않나. 크든 작든 결국 꿈은 꿈 깬 자의 각성이라고. 그래서 순순히 받아들여 근심하지 말고, 스스로 닦되 원망치 말아야지 하고 연습 중이지. 나도 아직은 이게 꿈인 줄은 아는, 꿈 속임을 아는 정도라서 집착은 덜 해졌지만, 꿈을 깬 경지처럼 확철한 건 아니니 한계가 있네.


한 참을 얘기하다 보니 목이 말라 캔커피를 두 개 샀다. 따기 전 무달형님은 캔을 흔들며

- 담벗. 이 찰랑이는 소리 들리지? 그럼 어떨 때 아무 소리가 없을까?

= 그야 꽉 찼거나, 텅 비었거나 아닌가요?

- 그게 일반적인 경우이고, 또 다른 상황은? 그렇게 다양한 상황들을 생각해둬야 하네. 깡통 속의 내용물이 얼었거나, 내용물이 액체가 아닌 내부에 들러붙어있는 고체의 경우도 있지.

= 그걸 어떤 의미로 봐야 하나요?

- 일반적인 경우를 벗어난,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한 부분이 예상을 빗나갔을 경우지. 그걸 치료와 연관시켜보면, 비었으면 채워야 하고, 넘치듯 그득하면 덜어내야 하고, 얼었으면 녹여야 하고, 단단하게 응고가 됐으면 불려서 연하게 만들어야 하지.


- 몸의 응고된 부분은 치료를 통해 불려지고 물렁하게 연해져야 몸 밖으로 배출이 용이하게 되거든. 그런데 딱딱하던 부위가 연해지면서 부푸는 과정에서 그게 초음파 같은 검사상으론 처음의 딱딱하던 때보다 크기더 커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환자들이 증상이 더 악화된 건 아닌가 하고 놀라는 경우도 많지. 그것 또한 치료의 과정 중에 나타나는 현상중 하나라고 설명을 해도 검사상의 결과만 믿어버리니 아쉽다네.


무달 형님은 최근의 근종 치료에 관한 케이스를 언급한다. 몸속에 굳어 뭉쳐진 부분이 있다는 건 마음 한구석에도 그런 응어리 진 부분이 있다는 반증이란다. 몸과 마음이 따로인 것 같지만 그 밀접함을 보자면 결국 모두 '속의 응어리'라는 점에똑같단다. 풀리는 과정도 심신이 같이 풀어져야 진도가 나간다고. 딱딱한 조직을 바로 떼내는 수술이 가장 편할 것 같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분해가 조립의 역순이듯, 그 처음으로 본래로 돌아가도록 하는 과정이  치료자뿐 아니라 환자 본인의 여러 상황들과 맞물리다 보니 병 자체의 문제를 넘어 가끔 주변의 환경이 더 중요하기도 하고. 특히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하기도 하고. 증상의 호전 여부나 치료의 가부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인연이 따르지 않으면 힘든 것 같다는 토로다. 쉽지 않겠네 싶었다.


해가 저물고 찬바람이 분다. 헤어지면서 무달 형님은 내일 변기를 고쳐야 한단다. 컴퓨터를 조립하기도 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막힌 배관을 뚫고, 감 깎아 곶감 말 리고, 참 바쁘게 사는 것 같다고 하면 그는 오히려 그 반대로 느긋하단다. 미리 관련 사항을 알아보고, 일의 순서를 그려보고, 생각이 정리되면, 천천히 준비해 뒀다가 한 번에 쓰윽 해치운단다. 그의 하루 삶을 들여다보면 단순하다.


-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전문가에 부탁하는 게 제일 좋지. 뭐든 돈 값을 하거든. 나 또한 그럴 상황이면 그렇고, 아니면 아닌 데로 또 그럭저럭 무리 없이 충분하더군.

= 그 러 게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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