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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r 26. 2022

자발적 가난 1

단순해야 단단하다

무달 선생. 그를 처음 만난 곳은 공부모임에서였다. 원전을 기본으로 하여 여러 임상과 관련한 얘기들을 주로 나누며 한의학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어느 날 내가 치료 중인 환자에 대한 케이스 발표를 하며, 뭔가 나 스스로 치료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과정에서의 조언을 구했다. 한 달 가까이 치료를 하고 있는데도 별 진전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은 내가 쓴 처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혹 이런 쪽으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든지 등의 의견을 냈지만, 내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헤어지기 전 나는 무달 선생에게 직접 답변을 구했다.

그는 대뜸 - 음양부터 봐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뭔가 끓어오른다. 아니 내가 그걸 몰라서 그런가 싶었고, 그런 원론적인 얘기는 하나마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말문이 닫혔다.

- 환자 아닌 자네 음양 말이야.

아! 하는 순간 다시 말문이 닫혔다. 정작 허둥대고 조급한 건 나였네.


한 가지 음식을 먹을 땐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오래 먹을 수가 없다고 일러준 것도 그였다. 한 번은 집사람이 통영 굴이 많이 나서 싸게 샀다면서 굴을 한 박스 시켰다. 생굴을 먹다가 굴밥, 굴전, 굴국밥 등등 3일 내내 굴을 먹다가 뭔가 물리는 느낌이 났다. 굴이 변한 건 아닌데 갑자기 굴 냄새조차 맡기도 싫어졌다. 그 후 약 2년간은 굴 근처를 가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굴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고기도 몇 끼를 연달아 먹으면 속에서 거부하다 냄새에도 울렁거렸다.


그를 만나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가지 음식을 먹어야 할 땐 조금씩 먹어야 계속 먹을 수 있단다. 배불리 먹으면 두 끼니 이상을 먹기 힘들단다. 그는 최근 감자만 먹는단다. 누군가 농사 지었다면서 한 박스 갖다주더란다. 김치랑 같이 먹으면 그럭저럭 맛도 좋고 허기를 면하는 정도면 감자 만으로도 며칠은 느끈히 가능하단다. 그러나 가만 듣고 있으면 경제적 결핍을 에둘러 표현한 것임을 알만하다.


한 번은 무달 선생 근처 사는 환자를 그에게 소개한 적 있다. 친구의 형이 오랜 어지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마침 같은 동네이기도 하고 해서 그쪽으로 권했다. 여러 병원을 거쳐 치료를 받아도 괴로움이 여전하기도 하고, 더 심해진 날도 많았단다. 그러다 잊고 있었는데 친구를 통해 무달 선생은 그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돌려보냈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 무달 선생을 만났을 때 그 일을 묻고 싶었다. 아니 따지고 싶었다. 왜 치료해주지 않고 돌려보냈는지? 내 체면은 어찌 되는지? 그는 담담하게 나를 보더니 "흔들리는 눈빛이 이미 말해주지 않았겠나? 무슨 도움이 그를 살릴까? 본인이 거부하는데." 그래서 일주일간 진정시키는 방법을 일러주면서 함 해보고,

할 만하면 치료해주겠다고 했단다. 그는 내친 적이 없단다. 단지 그런 상황에서는 치료해도 효과가 적을 뿐 아니라,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니 일단 본인이 이른 방법을 해보라고 시간을 줬는데, 친구 형은 그걸 치료 거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치료했다면 결과적으로 그게 오히려 내 체면을 더 손상시키는 꼴이 됐을 거란다. 스스로 흔들면서 흔들린다고 호소하면 어찌해야 하는지 오히려 내게 묻는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아이고 뭔가 고생이겠다 싶었다.


가끔 무달 선생이 난치성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의 치료 케이스를 발표할 때면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타 의료기관이나 여러 치료를 통해서도 낫지 않는 환자들은 답답한 마음에 물어물어 소개로 무달 선생을 찾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개자들도 무달 선생을 쉬 권하지 못했는데 그건 그 과정의 지난함을 잘 아는 터였고, 해서 비록 소개를 하지만 미리 환자들에게 마음 준비를 하고 가라는 예비교육을 하기도 했다.


무달 선생의 치료 과정과 치료 중의 여러 정황들에 대한 경과 설명들은 꽤 상세하다. 그건 직접 부닥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한 예시 들이었다. 환자도 환자지만 처방을 쓸 때의 고민들을 들을라치면 숱한 불면과 불안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의사와 환자가 처음의 약속을 굳게 했어도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 가끔씩 의도치 않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 과정 중에 불안해하여 정말 치료가 되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 환자들은 원장실로 그야말로 쳐들어다. 와서는 연유를 묻기도 하고, 따지기도 한다. 무달 선생은 여러 정황과 변화들을 설명하며 설득한다. 의사가 아무리 치료에 확신을 갖고 있어도 이게 상호 간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여 참 어려운 과정이다. 게 중의 어떤 환자들은 불안한 마음에 양방적 검사를 해 보지만 별 이상소견이 나타나지 않아 계속 치료를 이어간다. 이런 과정들의 반복으로 인해 그의 선택적 치료 성향은 더 뚜렷해져 기본기를 갖춘 이가 아니면 아예 돌려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런 난치 환자를 치료한 결과 그는 유명해졌을까? 전혀 아니다. 쉽지 않은 질환을 앓던 환자들은 호전 후 자신의 과거를 덮는다.


그의 처방을 받아 다른 이에게 또는 동일한 질환군에 적용을 하기는 곤란하다. 그의 처방 의도의 큰 의미는 알 수 있으나,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바뀌는 변화무상한 처방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아니 더 정확히는 따라갈 필요도 없다. 내가 직접 겪은 게 아닌 이상, 나의 의도가 들어가지 않는 한 그 처방은 많은 예시 중의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무달 선생과 환자 사이의 암묵적 믿음에 근거한 다양한 증상들의 출현에 맞춘 처방들이어서 그와 환자 사이에서만 유의미할 뿐, 다른 이들에겐 무의미한 정답들이다. 그래도 그렇게 이끌어 치료하는 과정은 좋은 사례의 표본이 되었다.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무달 선생이 내게 이름을 지어  줬다. 담벗. 담담함을 벗 삼아 살라고 지었단다. 무달 선생의 이름은 그의 스승님이 무한한 달빛처럼 세상에 오롯하라고 지어 주셨단다. 처음 무달이란 이름을 들었을  훤칠한 키에 마른 몸매라기보단 근육질에 가까운 무골 체형에 깡이 있어보이는 모습인지라 무술의 달인 쯤으로 생각하여 무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러면서 호를 받은 기념과 더불어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한다. 달빛 창가(月窗)의 [술몽쇄언]을. 무달 선생의 스승님이 말년까지 읽으신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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