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Oct 31. 2023

인간이라서 1

모자의 그 끈끈한 관계에서

-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어요?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지. 인간만이 그럴 수가 있어.

- 그동안 가족으로 살아온 세월은 어떻게 되는 거죠?

-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불안으로 흔들리면 나 이외엔 안 보이지.

 

몇 번의 통화로 엄마는 이제 그만 연락이 왔으면 했다. 친구가 아무리 사연을 호소하고 고민을 털어놔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에 그렇구나 그래 어떻게 하냐 하는 맞장구 외엔 달리 구체적인 방법도 할 말도 없었던 거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답답함은 매한가지다.


엄마 친구는 본인 명의의 빌라 한 칸을 가진 게 전부다. 노인 연금과 자식들의 용돈으로 생활을 한다. 넉넉지 않아도 굶을 정도는 아니다. 두 사람은 일 년에 서너 차례 만나 밥 사 먹고 엄마 집에서 차 한잔 마시는 정도로도 즐거웠다. 누구나 사는 게 그렇지 뭐. 자식들 큰 병 없고 손주들 잘 커주면 그걸로 좋은 일이라며.


예전 어려운 때에 회사에서 제공한 직원 아파트의 같은 동 위아래집에 살면서 만나 지금까지 벌써 40년이 넘는다. 한 살 터울의 비슷한 처지는 더 가깝게 되는 계기가 된다. 세월이 흘러 늘그막에 그나마 서로 마음 통하 부담 없는 친구 오래도록 이어짐도 드물다. 다른 계모임들은 멀리 이사 가고 떠나고 인원이 줄다가 모임이 흩어지고, 또는 병에 걸리고 다투고 질투하다 더 이상 모임이 지속되지 못하고 깨지기도 하는 판에 그래도 같이 늙어가는 있어 친구가 고맙다.


친구에겐 아들이 둘이다. 둘 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사는 건 같은데 형편이 많이 다르다. 큰아들은 대기업에 부장까지 승진하여 그럭저럭 잘 산다. 어려서부터 자기 것 잘 챙기고 욕심도 있고 승부욕도 있었다. 사회생활도 곧잘 적응하여 나름 인정을 받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단점이라면 약간 인정머리가 없는 정도지만 그것도 생존을 위한 적응이라고 본다면 그럴 수 있다.

 

작은 아들은 일용직에 셋방살이로 산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사는 게 빠듯하다. 잦은 이사로 늘 주소가 바뀌지만, 그래도 별 탈없이 잘 살았다. 그러다 작은 아들은 3년 전 현장에서 크게 다쳐 대수술을 한차례 했다. 그 후로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 현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정한 직업 없이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


사는 게 힘들고 형편이 어려운 작은 아들이 늘 눈에 밟히는 건 엄마 된 마음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해줄 게 없을 때 더 애가 탔다. 벌이도 좋지 않고 몸도 아픈 작은 아들. 작은 며느리와 손주들을 볼 때면 더 면목 없기도 했다.


그렇다고 큰아들이 아주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에 다니지만 자식들 서울로 해외로 공부시키느라 그 나름의 빠듯한 삶이다. 남들에 비해 비교 우위라지만 본인에게는 손바닥 뻔한 월급이다. 본인 소유의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를 팔지 않는 이상, 집은 거주지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친구의 실수 아닌 실수가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 이게 연산작용을 일으켜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여자의 일생이 아버지-남편-자식에 의지하면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렇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가끔은 당사자를 죽게 할 수도 있음이라.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든 자기 결정권을 자기가 가질 수 없다면 본인의 삶은 고스란히 의지처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런 친구를 응원했다. 아무리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기도 하지만 나이 들수록 목돈을 쥐고 있어야 든든하다며. 잘했다. 자식도 좋지만 내 주머니가 있어야 비빌 언덕이 되기도 하더라. 그리고 네 집도 절대 자식들 주지 말고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자식들이 와서 엄마를 찾고, 용돈도 주는 데는 그 집이 그래도 네 것이니 그러지 않겠냐며. 나 봐라. 내가 그렇게 당하지 않았냐. 너도 집은 끝까지 꼭 쥐고 있어야 한다. 네 죽고 나서는 자식들이 삶아 먹든 팔든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친구는 돈을 모았다. 원래 성격이 깔끔하고 음식 솜씨도 좋아 누가 도와달라면 얼른 가서 허드렛일이라도 하기도 하고, 구청의 노인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억척스럽지는 않았지만 푼돈도 결코 허두로 쓰지 않고 모았다. 그리고 제법 모았다.


친구 얘기를 엄마가 내게 한다. 그렇게 모은 돈이 천만 원이 넘는다며. 그럼 엄마는 돈 안 모으나? 난 그냥 이렇게 살란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친구처럼 일 못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만큼 쓰면서 그냥 이렇게 살란다. 죽은 네 아버지가 그래도 가장 잘한 것은 국민연금을 일시불로 찾지 않고 죽은 거다. 그 덕에 내가 네게 손 벌리지 않아 좋고, 국가에서 노인이라고 돈 주니 좋고. 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설마 네가 나를 어찌하겠냐. 단지 늙으니 여기저기 아파서 문제지, 난 아무 문제없다. 옆에서 듣던 나는 웃는다. 엄마는 참 좋겠다.


그런데 친구가 그렇게 꼬깃꼬깃 모은 돈을 어디 쓸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돈이 모이고 나서, 어디 쓸데를 찾는 일이 생기면 냄새가 나는가 봐. 표정에서 말투에서. 또 자식들은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나 봐.



작가의 이전글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