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Oct 30. 2023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나훈아의 노래. 사연을 넘어 기억의 회상으로

저렇게 환한 달빛은 스스로 밝은 게 아니라 햇볕에 반사되어 밝은 것이리라. 

꼭 제 스스로 밝은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어둠을 품고 있음은 항성이 아닌 거다.

달빛에 그림자가 지는 것은 달 내부의 굴곡이 그림자 되어 달빛 속에 드리운다.

반사되어 밝은 달빛은 끝내 달 속 제 그림자를 지울 수 없으니. 지금까지도.


어둑한 방에서 그는 진한 커피를 삼키며 나훈아의 이 노래를 듣는다.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노래만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며. 사연을 물어보려다 참는다. 기억의 회상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지 입술이 움찔움찔 주저한다.


내 나이 한창 젊은 스물대여섯 때였지요. 스무 살 때부터 이발관을 운영했는데 그땐 꽤 좋았다오. 몇 년만 일해도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을 정도였지요. 돈도 잘 벌어 잘 썼고, 홀어머니 봉양도 잘하고. 그 시절엔 세상 부러울 게 없었지요. 


집 옆에 다방이 있어 아침마다 쌍화차를 한 잔 마시고 출근했거든요. 향기롭고 들큼한 뜨거운 쌍화차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모든 게 술술 잘 풀리는 거 같았어요. 어떤 날 아침에 출근 전에 역시 다방에 들렀어요. 다방의 마담에게 쌍화차 달라고 하고 소파에 앉았는데 처음 본 다방 레지가 써빙을 하데요. 처음 봤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요.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대요. 성향을 잘 모르기도 했고 예쁜 것도 아니고 나이도 나보다 세 살 정도 위라고 해요. 그런데 자꾸 끌려요. 정양이라고 불렀는데 약간 퉁퉁하게 생겼는데 본인도 내가 그리 싫지는 않은 낯빛이더라고요. 


그렇게 몇 번을 보고 보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밖에서 만나게 됐어요. 같이 밥도 함 먹고, 놀러도 가고. 한 번은 밤에 정양이 얼마나 보고 싶던지 머릿속에 정양 모습이 생생해서 이러다 밤샐 것 같았어요.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담장을 타고 넘어갔지요. 


평소 저녁 8시쯤에 다방이 끝나 주방일 보던 사람이 퇴근하면, 마담은 문을 잠그고 퇴근했어요. 문을 잠가요? 아가씨는 안에 있고요? 예, 그 집이 이 층집이었는데 위층에 숙소가 있었어요. 가끔 일이 있으면 주방 아지매나 마담이 숙소를 같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문 잠그고 퇴근하거든요. 하여튼 그날은 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요. 현관은 잠겼지. 할 수 있나요 사다리를 갖고 와서 타고 올랐지요. 정양도 제가 그렇게 나타나 처음엔 놀라했지만 좋아라 하는 눈치였어요. 내가 그런 적 처음 이거든요. 놀래켜 미안하다고, 싫으면 가겠노라 했는데 그냥 있으래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렇게 사겼죠.


가끔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걸 마담도 눈치를 챘나 봐요. 보고 싶고 더 이상은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예 방을 하나 잡고 지냈지요. 정양도 숙소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내가 잡은 방으로 옮겼지요. 우린 그렇게 한 달을 같이 지냈지요. 정양의 어디가 그렇게 좋던가요? 에이참, 뭐 있나요 그 나이에. 섹스죠. 그렇게 잘 맞았어요. 영원히 잘 지낼 줄 알았죠. 


그런데 내가 친구들이랑 주말에 경주 놀러 갔다 온 일이 있었는데 그 길로 그만 헤어졌어요. 왜 자기 한데 말도 없이 놀러 갔냐고 따지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해도, 내가 말도 없이 간 게 떠난 듯이 느껴졌는지 그게 싫었나 봐요. 그렇게 한 달간의 동거는 끝났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게 정양과 헤어졌어요. 


그 길로 정양은 다른 다방으로 옮기고, 수소문해서 찾아가면 이미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렇게 결국 연락이 끊겨버렸지 뭐예요. 그때 내가 결혼하지고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한 게 후회돼요. 그런데 그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결혼해야 하니 마니 하는 생각이 없었어요. 마냥 좋게 잘 지낼 줄 알았거든요. 


그렇게 못 잊어하는데 어무이가 결혼하래요. 맞선을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도 집안 좋다고 자꾸 보라고 해서 어무이도 좋다고 해서. 그땐 어른 말을 거역할 수가 있나요. 그래서 첫 결혼을 했지요. 예? 첫 결혼요? 에이참, 내가 이런 얘기 처음 하는데 지금 집사람이 처음이 아니에요.


그렇게 결혼하고는 계속 뭔가 안 좋았어요. 오토바이 타고 가다 머리 다쳐 죽을 뻔했지, 고부 갈등으로 집안 시끄러웠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방이 컴컴하니 불도 안 켜고 구석에 앉아있지, 청소도 빨래도 그대로 있지. 뭐 사는 게 사는 게 아녜요. 애 놓고 십 년을 그렇게 살다가 너무 사는 게 구질구질해서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땐 어무이도 동의하데요.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내가 도저히 못살겠다고 하니 그제야 그러라 하데요.


그렇게 헤어지고는 다시 결혼과 이혼을 여러 번 반복했지요. 서류상 혼인은 대여섯 번 되고요. 비공식도 서너 번 더 있고. 그렇게 여러 사람을 지내보니 사는 게 그게 그거예요. 헤어지고 나서 얼마 지내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 번엔 좀 나을까 하고 결혼해도 막상 결혼하고 보면 연애할 때랑 달라서 또 실망하고 헤어지고.


그래서 더욱 저 노래를 들으면 옛날 생각이 납디다. 또 보고 싶어 눈물도 나고.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거는 어딜 가고, 뭘 보고, 뭘 먹고, 뭔 얘기를 했고 등등의 것보다 몸의 기억이 더 미치도록 기억나요. 맨살로 밤새 서로 껴안고 품에서 느낀 그 느낌이.


어쩌면 지금 어딘가 혼자서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 언젠가 또다시 우연을 핑계로 만날지 몰라

그렇게 노래는 루루루 루루로 끝난다


작가의 이전글 비탈에 삐딱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