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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01. 2023

인간이라면 2

버틸까 순종할까?  

한 번은 엄마 친구의 큰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그녀는 엄마에게 우리 시어머님이 요새 좀 이상하지 않냐며 물었다. 엄마는 모르겠다고 답하니,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치매끼가 있어 보이는데 요즘은 더 심해지는 거 같다며 엄마에게 그렇지 않냐고 재차 묻더란다. 엄마는 나이 들면 한 번씩 깜빡깜빡하는 일이야 누구나 있지 않냐고 답했지만, 그녀는 그 대답을 그렇죠, 아주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하더라는 거다. 엄마는 나이 들면 누구나 한 번씩 잊어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지 않냐고 해도, 그녀는 자꾸 시어머니가 치매가 확실하다는 쪽으로 유도를 한다.


엄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너 요새 괜찮냐고 묻고, 친구도 별 이상 없다는 확답을 직접 확인한다. 네 큰 며늘이 전화 와서는 치매니 뭐니 하던데 무슨 일 있냐고 재차 물었고, 친구는 요새 큰애가 병원 가보자는 얘기를 부쩍 많이 한다고만 했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엄마 친구분에게 마침내 모아둔 돈의 용처가 생겼다. 작은 아들이 전세를 살다가 이젠 어쩔 수 없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참고 참다가 결심한 친구분은 작은 며느리를 불러 몰래 봉투를 내밀었다. 벌이도 시원찮은 데 달세까지 내면서 생활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보태라고.


다짐을 받듯이 몇 번이고 약속을 건다. 이건 너만 아는 비밀이라야 한다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입조심을 시켜도 입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터져있다. 아무리 입을 꽉 다물고 다녀도 음식을 먹을 땐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야 한다. 그렇게 벌어진 입 틈새로 나온 소리는 결국 큰아들에게 들어갔다.


당장 큰아들 내외는 모친에게 돈이 어디서 생겼느냐, 뒤로 숨겨둔 돈이 더 있지 않냐, 나도 힘데 쟤만 아들이냐며 갖은 소란으로 쥐 잡듯 몰아붙인다. 며칠을 그렇게 닦달하더니, 큰며느리는 문득 어머니 집을 손주 앞으로 해달라고 조른다.


당장 이 집이 없으면 나는 어디서 사냐고 물으니, 며느리는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한다. 그냥 여기서 혼자 살면 안 될까 해도 며느리는 그럼 일단 살고 계시면서 명의만이라도 손주로 바꾸자고 보챈다.


그리고 얼마 후 큰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이상해졌다는 말을 여기저기 흘린다. 그렇게 엄마도 친구의 큰며느리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이다. 긴가민가해하면서도 나이 들면 누구나 잠시 그럴 수 있지 않냐는 엄마의 말에 며느리는 분명 시어머니가 치매 같다고, 아니 치매라고 한다.


그리고 결국 진단을 받아낸다. 비록 초기의 약한 치매 증상이지만, 앞으로 심해질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챙겼다. 엄마는 친구를 만나 보기로 했다. 어쨌든 치매 초기라면 약 열심히 먹고 치료 잘 받아라고, 빨리 나아서 나랑 밥도 먹고 놀러도 가자고 했다. 그래그래 우리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서로서로 두  다짐을 한다. 너도, 그래 너도.


치매 초기의 증상 있다고 약 먹던 친구는 결국 요양원에 들어갔다. 치매 관련 정밀 검사를 받으러 가자는 큰아들 말에 겉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 따라나선 그 길이 그대로 요양원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문서와 도장과 통장은 그대 집에 둔  얼른 검사받으러 가자는 아들의 말만 믿고, 검사는 금방 끝난다는 말에 몸만 빼서 나온 것이다.


요양원이 뭐 하는 곳이지도 모르고, 그곳이 요양원인 줄도 몰랐던 친구는 그렇게 요양원에서 요양을 하게 됐다. 어머니, 여기 푹 쉬시면서 몸 관리 잘하고 계세요, 두세 달 있다가 모시러 올게요. 큰며느리가 떠나며 남긴 말이다.


 활동하는데 별 탈 없던 엄마 친구는 여기서 잠시 있다가 나갈 줄 알았다. 검사만 하고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곳은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되어 밖에 나가 바람쇠는 것조차 하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아무 할 일도 없고, 멀쩡한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고, 갇혀있는 것 같아 답답해했다. 큰아들에게 전화해도 연락이 안 되고, 작은 아들에게 전화하면 형이 정한 일이라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한다. 혹 큰아들과 통화하게 돼도 바쁘다며 저기서 먼저 끊었다.


한 달 정도 지나 큰아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된장 고추가 정말 먹고 싶으니 집 냉장고에 있는 거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아들이 고추를 가지고 오면 매달려서라도 나가게 해달라고 물고 늘어질 심산이었다. 벼르고 벼른 작전이었다.


다음날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 입구에 맡겨뒀으니 드시라고. 그리고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치매의 단계도 초기 치매에서 중증 치매로 진단이 바뀌었다.


엄마는 이젠 친구에게서 오는 전화가 신경 쓰인다. 내가 살면서 악하게 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며 친구는 운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울음에 엄마도 우울해져 몹시 심란해진다고. 병문안을 가보려 해도 여의치 않는가 보다.


엄마는 그 요양원에는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고 들었다고 한다. 주변에 아는 사람 중 그녀의 남편도 그 요양원에서 그렇게 됐단다. 멀쩡한 이도 거기에 가면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육 개월 이상 넘기기 힘들단다. 그 창살 없는 감옥을.


방법이 없겠지라는 엄마의 말에 정말 구차한 방법이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겨우 내가 생각한 비참한 방법을 얘기한다. 다만 그 방법이라도 쉽지 않고 가능성도 낮다. 굳이 쥐어 짜낸 방법은 억지로라도 연극을 해서라도 큰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제 집으로 데려가도 엄마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지라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개 숙여 잘못했노라고 무릎 꿇고 여차하면 가랑이 사이로 기어갈 각오가 아니면 속이기 어렵다. 큰아들은 아마도 엄마가 모은 돈이 그렇게 동생에게 몰래 흘러 들어간 걸 보면, 소유하고 있는 빌라도 동생에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이 하려는 것에 딴지를 걸지 않고, 모친이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요양원에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보호자의 동의 없인 요양원도 이익이 있으니 움직이려 들지 않을 테니.


슬프다. 내가 왜 이런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지. 

내 유추가 망상이길, 허무 소설이길 바란다.

기껏 이걸 방법이라고 말하는 현실이 비현실적이다.

제는 극적인 드라마조차 드라마 같은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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