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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08. 2023

어떤 대응

무슨 말이라도

감정 조절이 어긋나 한 번씩 쉽게 욱하는 성격이라, 자극에 금방 반응하는 버릇을 반성한다. 아마도 스스로 이 정도쯤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예상을 벗어나거나, 기대치의 불만족이 기저에 깔려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뭔가 억울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화가 나고 열이 오른다.


그런 감정상태에서는 상대방의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평소 잘 흥분하지는 않다가 그 수위가 무너지면 분별력이 떨어지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대를 쏘아붙인다. 물론 원인이 무엇이든 신경이 곤두선 나의 감정선에서 출발했지만, 나의 무식한 대듦에 상대의 대응을 살펴보면 그 방식 또한 다양하다. 


왜 자신에게 그러냐며 같이 맞짱을 뜨자는 식의 반응이다. 그 또한 할 말이 있음이다. 원칙이 그렇고, 본인의 역할이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직위에 충실할 뿐이다. 단호하다. 철벽을 치고 밀치고 막무가내다. 요지부동으로 같이 고함을 치며 막아선다. 그렇게는 안됩니다. 


그가 그렇게 단단히 지키려는 그 원칙이 다른 모든 이에게도 모든 상황에서도 일관성 있게 지켜지길 빈다. 윗선의 지시사항이면 언제든 폐기될 규칙들이겠지만, 그 단순한 충직함이 그의 역할임을 알아차렸어야 한다. 그의 역할을 인정하고 패스를 했어야 하는데, 그의 직분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일단 막아서는 그에게 대들게 된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그는 거기까지다. 수문장의 역할이지 않은가.


어찌어찌 담당자를 만나게 되고, 담당자에게 사정을 얘기한 후 그의 반응을 보면, 정해진 어구의 무한 반복이 계속된다. 최선을 다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왜 그렇게 했냐고,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냐고, 무슨 말을 해도 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게 정말 최선이냐고 물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는 말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 외에는 모릅니다, 모르겠습니다로 일관한다. 마치 청문회에서 질의에 대한 대답으로 '알아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의 무한 반복처럼.


어떤 질문에도 담당자의 고정된 답변은 무한 반복된다. 그게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다.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쩌란 것인가. 과정의 최선이든, 결과의 최선이든, 그게 최선이었으니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인가?


마지막엔 책임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결정권자나 책임자는 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의 대처법은 침묵이다. 무슨 질문을 해도 듣기만 한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다그쳐도 오직 침묵이다. 긍정도 부정도 없고, 변명도 없다. 


법적 조치에 대한 계산까지 염두엔 둔 대처인지 모르겠다. 잘못 실언을 할까 봐 아예 아무 말을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방식은 무대응의 침묵이다. 아무리 언성을 높이고 따져도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심지어 눈빛은 딴 곳을 응시하거나 멍하기까지 하다. 외면 같은 침묵. 그렇게 일방적인 말만 한쪽에서 계속하는, 대화 없는 상황에서 책임자는 침묵하고 당사자는 서서히 지친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고, 어떤 입장이라도 좋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뭐라도 좋으니 무슨 말이든 들으러 왔다고 말하지만 끝까지 묵묵이다.


싸우지도 않고 이기는 방법이 있다. 거기엔 도道나 덕德이 필요하다.

목계지덕(木鷄之德)의 방식은 노려보거나 몸짓으로 이미 제압하는 것이다. 싸움닭의 최고봉으로 지칭되는 그의 싸움 방식은 외면이나 도피가 아닌, 자세에서 뿜어 나오는 기세로 이미 결정된다. 시끄럽게 싸울 필요가 없다. 알아서 저도 모르게 그 후광에 저절로 오금이 저려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기운의 승리다. 


무한 반복의 대답이나 무대응 무반응으로 지쳐 나가떨어져 제풀에 쓰러지게끔 하는 방식은 당당하지도 않은 야비한 대응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멘털의 소유자인데, 기분이 참 그렇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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