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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13. 2023

화난, 환한 뺨

이빨 꽉 깨물고, 입은 꾹 닫고

아무리 평소에 잘 표현 않는 아들이라고 해도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 곤란했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아비가 보기엔 뭔가 문제가 있는데도 아들은 아무 언급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생각이 많은 놈인 줄은 잘 알지만, 그래도 무슨 일인지 걱정되는 것은 아비로서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그래서 지켜봤다. 참았다. 평소와 뭔가 다른데 차마 계속 아닌 척하기도 힘들다. 입속에서 맴도는 질문들에 더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말없기는 힘들다. 아무리 사춘기 아들이지만 아비로서 더 이상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미도 벌써 몇 번을 아들에게 뭔 일이 있는지 물었다. 아들은 아무 일 없어요. 시니컬하다. 특유의 무표정. 분명 분위기상 지금의 상황이면 혼란과 답답함으로 힘들어할 만 한데 아들은 별일 아니라고 말한다. 아무 일 없다는 게 쟤가 알아서 한다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부모로서 그래 알았어라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퇴근하고 집안의 쏴한 공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집사람이 요즘 아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는 말을 몇 차례 했지만, 지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말했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그렇게 계속 넘어가서는 부모로서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에 더는 아들에게 아무 질문 없이 넘어가기는 힘든 상황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이젠 키도 아비를 넘는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별 탈없이 잘 지낸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게 없으면 그 정도로도 넘어갈 수 있다. 다만 뭐가 되고 싶고, 무슨 일을 하고, 목표가 뭔지 등등의 거창하고 대단한 것보다 일상의 소소한 애환과 기쁨에서 정이 쌓이고 사랑이 깃든다는 아비의 평소 지론을 아들은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모를 수가 없다. 


아비의 직업상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이 집에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여 부인이나 아들이 잘 먹는 음식도 뚝딱 잘 만들어 바친다. 큰 꿈같은 얘기보다 잔 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비는 먼 미래의 장밋빛도 좋지만 지금 당장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끼니를 잘 챙기는 아버지에 아들은 말없이 잘 먹고 잘도 웃는다.


다만 타고난 성격인지 아들은 말이 별로 없다.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다 그렇다는 말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다들 그러려니 한다고 해서 그도 같이 그러려니 하고 동조할 상황은 아니다. 그냥 아무 말없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건 부모자식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아들은 뭘 물어도 서너 번 같은 질문을 해야 겨우 가타여부의 답변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단답형으로. 대답이 짧다. 부연설명으로 이해나 설득의 과정이 필요한 듯한데 그것이 아들에게는 그의 생각 속에서만 나열된다. 아비는 그게 아들놈의 성격이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금방 답변이 안 나오는 상황은 늘 마른 식빵을 한 움큼 입안 가득 베어 문 느낌이다.


그날. 아비는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특별한 질문을 한 것도 아니다. 방학이 언제까지고? 멀뚱하다. 방학이 언제 끝나냐고? 언성이 좀 높아졌다. 뭐요? 뭐? 방학이 언제 끝나는지 물었는데 '뭐요'라니? 이내 아들은 말이 없다. '뭐요'라는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쁠 수가 없다. 뭐 어쩌라고 처럼 들리기도 하고, 뭐가 문제냐고 따지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새끼가? 똑바로 서서 이빨 꽉 깨물어 인마.


아비는 뺨을 후려친다. 머리가 휘청하고 자세가 후렉 돌아간다. 똑바로 서 새꺄. 다시 뺨을 한 차례 더 날린다. 네 엄마 아빠가 왜 이 고생을 하는데. 너 없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 새로운 거래처에 손 비빌 필요도 없고, 대충 살면 돼. 근데도 더 열심히 돈 벌려고 해. 왜 그런지 알아? 아비의 호흡이 가쁘다. 고작 방학이 언제 끝나냐는 물음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냐? 그리고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아들은 고개를 푹 쑥이고 말이 없다. 시뻘겋게 얼얼할 뺨을 만지지도 않는다. 그러곤 제 방으로 들어간다. 옆에서 부인도 평소와 달리 남편 편을 든다. 손찌검을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잘했다는 표정이다. 아비를 말리거나 왜 그러냐고 아비 손을 붙들지도 않고 한 발 물러나 서서 보고만 있었다. 


아비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밤새 이 생각 저 생각이다. 머리도 좋고 나름 공부도 잘해서 부모의 기대가 많은 놈이었는데 뭔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다. 뭘 하긴 하는데 뭘 하는지, 잘하고는 있는 줄은 짐작하지만 어떤 게 힘들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원래 성격이 그러니 살갑길 바라지도 않지만 뭔 생각을 하는지 파악조차 힘들다. 능구렁이 같은 놈. 막상 맞은 놈은 두 다리 뻗고 잘지 몰라도 때린 아비는 뒤숭숭 뒤척인다. 


다음날 아들을 불러내 그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한 끼를 사 먹인다. 이래나 저래나 내 새끼이지 않은가. 아비의 뜻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정말 그렇게 철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며칠 후 신문사에서 연락문이 왔고, 그 속에는 최근 벌어진 학생부 시사 경연대회에서 아들이 금상을 받았다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다. 대상은 아니지만 금상이란다. 이런 일이. 이력에 올릴 만큼의 큰 사건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다. 그날 뺨을 손댄 게 후회가 된다. 혼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묵뚝뚝한 아들놈에게 당장 내색을 할 수도 없고. 서로 바쁘다는 핑계이긴 하지만 주말까지 기다린다.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더라. 네. 참 단조롭고 건조한 대답이다. 알고 있었나? 대충요. 이 놈아 왜 얘길 안 했어? 말이 없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이라도 좀 할 수 있었지 않냐? 뭐, 될지 안될지도 몰라서요. 

하여튼 아들 새끼 하는 말하는 꼴 좀 보소. 야단을 치나 칭찬을 하나 아들은 단답 외엔 입을 꾹 다문다.

요새 날씨도 그렇고 닭 한 마리 삶았다. 마늘에 인삼 넣고 푹 끓였다.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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