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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22. 2023

꽁무니

모자간 사소한 얘기

말을 할 듯 말 듯 머뭇거린다. 허리, 무릎 아파 침 맞으러 올 때와 달리 오늘은  이상하게 뜸을 들인다. 눈치를 보는 게 다 읽힌다.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그게 좀 그래. 뭐가?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인다. 이게 한 10년도 더 됐는데,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도 그렇네. 통 시원찮아.


어디 잘못되고 불편한 일이 있는가 보다. 일단 진료실로 가자고 손을 잡고 엄마를 베드에 눕힌다. 누웠어도 주저하다가 그럼 이거 함 봐줄래 하고 엎드려 바지를 내린다. 여기 좀 봐주라. 엉덩이까지 바지를 슬슬 내린다. 꼬리뼈 근처에 피부가 검다. 동전 크기보다 큰 뭔가가 시커멓고 딱딱하다.


왜 이래? 나도 몰라. 언제부턴가 가렵고 아프더니 짓무르다 점점 커지더니 이젠 더 이상 커지지는 않는데 굳었는지 딱 달라붙어있다. 앉아서 자세를 뒤로 젖히다 거기가 바닥에 닿으면 아파. 이거 좀 어떻게 안될까? 한 번씩 가렵고 통증 있어 자꾸 손이 가.


원래 종기가 잘 생기는 엄마는 일을 할 때 억척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고, 한 번씩 지친 몸은 열기가 지나가고 나면, 남은 습기가 아래에 머물러 습담을 이룬다. 반복되는 피로로 몸의 아래 부위에 찌꺼기가 쌓이고, 생리적으로 하초의 순환장애는 차갑게 작용하여 습담을 한습으로 엉기게 한다. 그렇게 종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이렇게 누적되어 피부가 변색되고 변형이 되어 미골부위에 태선화와 각화의 형태로 자리 잡는 것이다. 


치료를 해도 시간이 걸린다. 묵은 병은 그 시간의 흔적이 깊다. 회복을 하는데도 일도쾌차는 드물다. 뭔가 근질거리면서 시원하네. 몇 번을 더 손봐야 할거 같다. 그래도 조금씩 덜 해 지는 게 어디야. 살 깊은 곳이라 네게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참고 있자니 힘들고, 다른 치료는 효과가 잘 안 나고, 그래서 그랬다.


부모자식 간에 그런 게 뭐 대수라고? 그래도 부위가 부위인지라. 

나를 낳았잖아. 그래, 이른 봄날 오후, 저녁 보리밥 지으려다 낳았지.

내가 거기서 태어났는데 뭐가 그렇다고 그걸 그렇게 오래 숨기고? 그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지.

부끄럽다고? 내가 남잔가? 이놈아, 그럼 난 여자냐? 넘사스러운 곳이라서 그렇지.

하여튼 시간이 걸리네요. 그래, 고맙다. 내 속에서 낳은 자식이지만, 지금은 다 큰 어른 놈 아니냐. 


걸어가는 뒷모습이 좀 가벼워 보인다. 간혹 뒷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앞모습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흑백사진 같이. 가장 나중의 기억에 남겨질 추억으로 뒷모습이, 떠나는 그 모습이 꼭 쓸쓸함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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