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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27. 2023

역시, 록키

언제 감이 떨어지는지

어떤 아이의 엄마가 허리가 아파 치료했다. 잦은 요통으로 한방이든 양방이든 치료를 많이 해왔으나 언제 또 허리가 아파지지 않을까 하는 요통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나은 후에 이른 말이 있다. "치료로는 아픈 곳이 좋아지고 일상생활을 할 정도는 되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치료는 통증에 대한 처지 정도의 과정이니 또 아플까 걱정하기보다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는 요가 시범을 보일 정도로 나름 고수가 됐다. 요통은 거의 사라졌지만, 열심인 운동으로 팔다리에 근육 긴장이 있는 정도였다.


그녀에겐 아들이 있었는데 비염으로 시달렸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그에게 얘기했다. 너 운동 좋아하지? 네. 무슨 운동 좋아해? 축구요. 그래? 그럼 축구해라. 원래 축구를 좋아하는 데다 비염의 치료법 중 하나로 운동을 하라고 하니 좋아라 하며 그는 거의 매일 축구를 한다. 신나게.


애 엄마는 아들이 운동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너무 축구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한다. 몸이 좋아지면 공부도 할 거라고 했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애엄마는 뭐 나도 공부를 잘한 게 아니어서 그리 기대는 않지만, 그래도 나중에 대학을 가려면 공부는 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걱정이었다.


그 애가 올해 고 3이 되었다. 잘 먹고 잘 뛰어놀면서 키도 크고 체격도 커졌다. 그런데 축구만 열심이던 그가 올해 초부터 갑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전에 없던 일이기도 하지만 열심이다. 애 엄마는 요즘 애가 안 하던 짓을 하는 게 신기하다며 말한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코피를 흘리는 일까지 생길 정도로 열심히라는 거다. 고맙기도 하지만 왜 그러냐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냐고 내게 말을 전한다.


수시를 넣을 때만 해도 지원할 대학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놀았으니 갈만한 곳이 없었고, 그래도 이젠 정신을 차렸는지 자기 나름 뭔가를 이제 해보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엄마는 말한다.


수능 달포 전. 그가 왔다. 축구하다 발목을 삐었다며. 시험이 코 앞인데 점심시간에 축구를 했단다. 수능이 곧 인데 다쳤으니 치료는 받아야 한다며 왔다. 기특한 놈이다. 하고 싶은 거는 다 하면서 사는구나. 네가 나 같은 쫄보보다 낫구나. 모르는 척 넌지시 물었다. 고 3이라 힘들지 않냐고. 힘들다고 말하지만 뭔가 씩씩한 대답이다.


무슨 과를 가려고 하는지, 시험 끝나면  뭘 하고 싶은지 등등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구체적인 질문은 부담까 싶어 넘겼다. 치료 후 환약을 한 알 손에 쥐어줬다. 공부하다 힘들면 먹으라고. 도움이 될 거라고. 힘이 될 거라고만 말했다.


인생의 어느 변곡점이 있다면 수능도 그중의 한 점이 되리라. 그 떨리고 힘든 과정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오직 본인만이 직접 치러내야 하는 과정이다. 그도 그렇게 수능을 봤으리라.


이번 수능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그가 지금까지 치른 모든 모의고사보다 수능을 잘 봤단다. 이젠 수시 결과가 안 좋길 바란다. 애 엄마는 아들이 왜 그리 열심히 공부했는지 내게 전한다.


고교 2학년 끝나고 겨울방학 때 록키 영화를 보고 감동을 엄청 받았단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하고. 잘하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어려서부터 기차를 좋아한 일이 생각나면서 기차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대입 수능 끝난 그놈이 다시 왔다. 또 축구하다 발목을 삐었단다. 그래 시험 끝났으니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영국 여행을 갈 거란다. 부지런히 아르바이트해서 돈 모아 영국 프로 축구 보러 갈 거란다. 훌륭하다.


애엄마는 갓바위 기도 덕분일까, 내 새끼라서 그런가, 여하튼 웃음기가 가득이다.


시간이 걸리는 일들에 사람들은 도대체 감이 언제 떨어지냐고, 언제 익어서 떨어지냐고 묻는다. 때가 되면 당연히 익어 떨어진다고 해도 그때가 언제냐고? 감이 익은 때라고 하면 감이 언제 익냐고?


때가 되면 저절로 익는다. 가을 지나 겨울이 되면. 그냥 저절로. 아무런 손을 대지 않아도 잘 익는다. 아주 빨갛게. 이걸 기다리기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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