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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30. 2023

꿈 전체가 꿈

이렇게 또렷한 꿈속 나도 꿈

간 밤에 꾼 악몽으로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깬다

식은땀이 싸늘하게 목을 적시고

새벽의 차가운 어둠에 코끝이 찡하다


이 꿈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몇 년에 한 번씩 잊을만하면 나타났다


처음엔 허허벌판 광야에 나 홀로 서 있었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보일 듯 말 듯한 큰 바위가 구른다

엄청난 크기의 둥근 바위가 계속 굴러 내게로 오는 것 같다

넓은 평야에 마른 잡초와 미풍이 불고 멀거니 바위를 보다 깬다


몇 년 지나 잊고 있던 그 바위꿈을 다시 꾼다

그때보다는 더 가깝지만 아직은 멀다

다만 바윗돌의 구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두룩쿠룩


또 몇 년 지나 바윗돌은 훨씬 가깝다

벌판에 바람이 심해 흙먼지가 일며 구르는 돌의 진동이 발에 느껴진다

내가 어디로 가든 바위는 나를 향할 걸 안다

꿈속이지만 나는 그 바윗돌을 피할 수 없음을 안다


꿈이 이렇게 시리즈처럼 나타나기도 하는지

꿈을 깨고 다시 든 잠으로 꿈이 이어지는 경우는 봤어도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꿈이 몇 년에 한 번씩 꾸어진다


엄청난 바위가 이제 코앞까지 닥쳐 거친 돌벽을 마주한 것 같고

고개를 치켜들어도 바위 꼭대기는 보이지 않는다

내 시야가 미칠 수 없는 각도다

도망칠 수도 벗을 날 수 없다 곧 눌려 죽겠구나 숨이 막혀 잠을 깬다


그렇게 바윗돌 꿈은 막판에 긴 시간 간격을 좁혀

며칠 연속으로 나타나 결말을 맺는다


바윗돌은 나를 으깨고 구르며 한 바퀴 돈다

돌 구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바닥에 내가 없다

뼈가 깨지고 피가 터졌을 텐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지

바윗돌에 박혀서 내가 같이 굴러가고 있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바위에 박힌 나는 눈을 뜨고 있다


그렇게 나를 덮친 바윗돌이 굴러간 이후

이 꿈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아직은

아마 내가 죽어 연속극이 끝났는가 보다


꿈을 꾸는 동안 꿈속에서는 꿈인 줄 모른다

꿈속의 일이지만 꿈속에선 항상 죽음 직전에 놀라 가위눌리듯 잠을 깼다

마지막 꿈속에선 내가 죽어도 나는 꿈을 계속 꾸고 있었다


꿈속의 내가 주체가 되어 현실처럼 살아가는 것 같지만

꿈속에서 내가 죽었는데도 꿈이 이어지는 경험은

꿈속의 내가 아니라, 꿈 전체가 꿈이 되어, 내가 그 꿈을 꾸는구나 싶다


현실 속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나로 살아가고 있는 건가

어쩌면 시공 전체가 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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