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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Dec 04. 2023

나 든 친구가

나 덜 든 친구에게

안녕, 잘 지내지? 나, 안경 낀 형이야. 네 엄마가 내게 붙여준 별칭이지. 기억나?  어렸을 때 우리 같이 그림 맞추기를 하며 놀기도 했. 사물의 일부분을 조그맣게 그리면 그게 뭔지 서로 알아맞히는 그림 놀이였지. 사물의 특징을 잘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놀이였어. 평소 많은 상상을 하고, 사물과 대화를 잘할수록 그림이 섬세해지고. 나름 재미있었어. 그런 면에서 넌 좀 특별하기도 했지.


꽤 오래 우린 서로의 삶을 사느라 연락을 못했네. 최근 네 엄마와 연락이 닿아 이렇게 근황을 전한다. 이젠 너도 성인이고, 나도 벌써 중년이네.


네가 힘들게 살아왔다고 들었다. 현재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지 않고. 과거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어렵게 버티고 견디는 것 같다고. 직접 만나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하다 이렇게 글로 쓴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쉬 것 같지만 오해의 소지도 생길 수 있고, 더구나 오랜만의 만남이라면 더욱 서로의 입장에 다가서는 과정이 몇 차례는 되어야 조금씩 나아질 것 같아. 긴 시간이 필요할 듯. 그래서 곱씹거나 반추하기에는 글이 수월할 것 같더라.


선택할 수 없고, 의도와 무관하게 이미 되어버린 많 것들에 대해선 '그냥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누구든 태어남 자체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일들이지. 그래서 왜 나를 낳았냐는 둥, 내가 왜 태어났는지와 같은 원망 섞인 물음은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누구든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거든.


태어난 장소나 부모도 선택 사항이 아니지. 남자로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고.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된 거거든. 싫다고, 거부한다고 해서 바뀌거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그 일이 무엇이든 일단은 '그냥 그렇게'받아들여야 해. 그냥 그런 거지. 그냥 그런 것 좋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그냥 그런 거지.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냥 그런 거지.


지나버린 과거와 불안한 미래도 너무 심각하지 않길 바라. 현재에서 어찌할 수 있는 시간들이 아니거든. 억울하고 화나는 과거들이 현재에 영향을 미친 건 맞지만, 그렇게 지나간 일들에 대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겨우 지난 일들의 원망을 지금하고 있을 뿐이거든.  


지난 과거들로 인해 현재를 망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야. 그 아픈 과거로 인해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까지 몽땅 삼켜버리는 일은 끔찍하기도 하다.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현재가 아닌, 지나간 시간에만 머물러 현재를 과거로 덮으면 비록 현재에 있지만 현재 사는 과거인이 되고 말아.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너무 아깝다. 그 지나가버린 과거에 종속된 현재라면 정말 소모적이다. 과거의 집착으로 현재까지 저당 잡히는 일은 누구에게든 깊은 늪에 빠지게 하는 몰락이지.


심각하게 영향을 끼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지.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그에게 예속되어 허우적대는 본인을 확인할 뿐이야. 너는 너인데도. 그의 옛날 말들이나 선택으로 가 지금 이렇게 됐다고 탓하고 원망하는 것에서도 이제는 벗어나길 바라.  본인이 아직도 그의 영향권에 있다는 착각의 발목잡기지. 마치 서커스의 어른 코끼리가 어렸을 때 묶여본 체인을 아직도 불가능의 끈으로 여기는 것처럼.


우린 각자 자기의 길을 가야 해. 동행을 하더라도 그 길은 자기 발로 걸어가야 해. 그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와 동행하기도 하고. 여러 상황이 바뀌고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자기 발로 직접 땅을 디디고 가야 해.


누가 나를 끌고 가거나 업고 갈 수도 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의 일이지. 그리고 그런 일이 지속되면 스스로가 자의 주인이 아닌 거지. 내가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도 엄청 부담이지만,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고, 힘들어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쉴 수 있는 일들이, 나를 업은 그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일로 되거든. 나를 도와줘 고맙지만 의지할수록 점점 더 귀찮은 일이 되기도 해. 기대지 말고 홀로 서서 걸어가 봐. 그게 더 자유롭다. 그런 도움들은 기꺼이 바이바이 해주라.


주변에 대한 불안감도 많을 거야. 비교할수록 비교당할수록 극복이 쉽지가 않아. 남들은 다 잘 나가는데, 자기만 뒤처지는 것 같고, 나만 바보처럼 사는 걸로 느껴져. 학창 시절 나보다 못하고 찌질해 보이던 놈들이 지금은 더 잘 나가고 멋져 보이기도 하지. 그럴수록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본인을 더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나 어찌 보면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지. 그처럼 너도 너의 길을 가야 . 그들의 성공이 아무리 부럽고 화려해도 그건 그들의 것이지.


누구에게나 똑같은 일이야. 그리고 내게도. 성공이든 실패든 모두 나의 삶이거든. 뭐가 됐든 나의 길이지. 내가 내 발로 걸어가는 길. 그 길에 무슨 잘잘못이 있고 승패가 있을까. 그냥 나는 나의 길을 묵묵히 재밌게 가면 그걸로 충분해.


살면서 누군가의 삶이 또는 어떤 직업이 일시적으로 부럽기도 하고 그러지 못한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원히 나는 나야. 내가 나 아 방법이 없어. 내가 나 아닐 수도 없고. 그렇기에 나는 나이거든.


이게 뭐 어서? 잘나고 못나고의 기준이 있기는 있는 거야? 그리고 그 기준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 같아? 인생은 계속돼. 지금의 평가는 지금의 값으로 두고, 나는 내 길을 가는 거지. 사실 그것밖에 달리 할 것도 없어. 그래서 이왕이면 재밌게 살아가야지.


어떻게 하나? 더 쉽고 빠르고 잘하는 방법은 뭐지? 남들은 더 높이 올랐는데 나는 뭐 하고 있지?


묻지 말라는 게 아냐. 주변을 살펴보지 말라는 말도 아냐. 일단 걸어. 산을 오르는 방법은 한 걸음씩 걷는 거지. 그냥 길을 따라 걸으면 돼. 그걸 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강변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동안 한 걸음 더 걷는 거지. 답답해도 그냥 걷고, 화가 나도 그냥 걸어. 그냥 걷다 보면 어느덧 산 정상에 올라 있어. 나는 그냥 걸었는데 그 산 꼭대기가 내 발 밑에 있게 돼. 저절로, 나도 모르게.


나중 산을 내려와 그 산의 정상을 바라보면 참 신기해. 내가 어떻게 저렇게 높은 산을 갔다 왔다는지.  시간이 지나 다시 산을 오르고 내려와 그 정상을 봐도 또 똑같은 신기함이 있어. 산은 그저 그냥 그렇게 오르고 그렇게 내려오면 돼. 그래도 뒤돌아 보면 역시 신기해.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걸어봐. 생각으로 생각을 멈출 수도 없고, 생각만으로 생각의 결론이 나지도 않아. 생각이 정리되기는 하지만. 생각 미래의 걱정과 불안 해결해주진 않더라.


지금 현재에 충실할 것. 이것이 나를 더 발전시키고 넉넉해지도록 하루하루 살아가면 이미 성공이야.

이게 내 인생이고, 내 삶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니까. 더 이상 뭘 어떻게 한 단 말인가. 뭘 더 할 것도 없어. 내 한계이기도 하지만  어때, 그게 나야. 그걸로 충분해. 아주 괜찮지.


걱정 말길. 세상에 태어날 때 나가 선택한 게 아니듯이 살아가는 것도 내가 잘하고 싶다고 잘 되는 것도 아냐. 대신 나는 나의 길을 열심히 가는 것. 그리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둬. 한 낱 인간이 결과를 알 수도 없고, 결과를 결정할 수도 없지. 그건 신의 영역이거든.


남을 의식하는 것도 재미없다. 남은 남이지.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물론 남들의 평가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몇 마디 말에 내 시간을 허비하는 게 더 아깝다.

나도 남들을 평가하기도 하지. 그게 나를 더 풍성하게 하고 나의 성장에 자극이 되길 바라면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걸어가길.

자신을 더 사랑하고 믿어주길.

결국 인생은 혼자의 걸음이지만, 같이 가는 이들에 서로 기쁨이길.

나는 나로서 나를 아끼고 이런 내가 나는 좋아.

너도 너에게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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