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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r 15. 2022

간곳모름동

부르고 불려질 이름

얼마나 무거웠으면 동네 이름이 무거동이다. 아니면 사람이 살 수 없거나 거주하기 힘든 동네라서 무거동인가 했더니, 길을 안내하던 동자승이 갑자기 사라져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하여 지명으로 되었단다.


알려진 유래는 렇다. 신라 말기에  국왕은 쇠퇴하는 국운을 다시 일으키고자 신하들을 불러 의논하였다. 그러나 하나같이 기울어진 국운을 되돌리기 힘들다는 의견들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국의 고승들을 불러도 다들 핑계를 대며 피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스님이 찾아와 신묘한 방법을 제시하겠단다. 왕은 기쁜 나머지 독대 신청을 받아들이고 스님을 불렀다. 그런데 스님의 키가 너무 작고 못생긴 것이다. 묘법을 듣기도 전에 얼굴을 본 왕은 실망과 동시에 어찌 저런 사람 국운을 논할까 싶어 인상을 찌푸리며 퇴짜를 놨다. 스님은 돌아갔다. 기분이 나쁘다라기보다는 이러한 왕의 판단력과 품위가 국가 존망을 더욱 재촉하는 게 어쩔 도리 없음을 알고 체념하면서.


그런데 스님이 돌아가고 나서 누군가 황급히 왕에게 알린다. 그분이 문수보살이신데 어찌 그냥 보내셨냐고, 빨리 서둘러 다시 만나 보셔야 한다고 고한다. 그제야 왕은 시급히 스님을 쫓아가지만 이미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해서 스님 거쳐를 알고 있는 동자승의 도움을 받아 태화강까지 도달했다. 거의 다 왔노라는 동자승은 강을 건너자마자 자취를 감춘다. 강을 건넌 왕의 일행은 사라진 동자승을 불렀는데 끝내 동자승의 자취를 알 도리가 없었다. 도저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하여 동네 이름을 무거동(無去洞)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식으로 무거동을 해석하면, 더 이상 

갈 수도 없고, 갈 데 없는(無去) 마지막 장소라서 무거동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 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못 떠나는가? 갈 데까지 왔으니.

아님 아무 가진 것이 없는 무의 상태, 무소유이어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동네라는 뜻 같기도 하다.   오고 감에 얽매이지 않는 동네란 뜻 같기도 하다.


 상호를 정할 때였다. 일을 하게 되면 나 자신에게 가장 경계로 삼아야  게 뭘까? 잘해서 남부럽지 않은 성공하기보다는 지 말아야 할 가치를 일깨우는 이름이 좋을 듯했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나온 결론은 매일 새로워지거나 조금씩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익숙한 시각을 환기하는 것. 그래서 항상 ‘새롭게 보자’의 '새봄'이라는 이름으로 작명을 했다. 일반 사람들은 '새봄'을 따뜻한 봄날로 떠올린다. 그러나 그건 그 해석 그대로 둘 뿐이다. 내가 이 생업을 지속하는 한 그 의미를 잊지 않고 되새김이 중요하다.  

  

 마다  육십갑자의 이름이 있는데, 나도 매년 연초에 그 해이름을 짓는다. 전 연호 짓듯이. 한 해의 희망사항과 바라는 바를 담아 짓기도 하고, 또는 1년을 견지할 가치를 담아  짓기도 한다.

올해는 체관(諦觀)이라고 짓고 벽에 써 붙였다.

체관은 상념을 끊고 사물을 조용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생각하는 일 또는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의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최근 누군가와 약간의 언쟁이 내 선입견에서  비롯했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화도 났지만 한편 부끄러웠다. 멀리서 보면 별 일도 아닌 것들이 현실에 맞닿아 부딪치다 보면 잦은 마찰이 생기게 되는 꼴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았다. 올 한 해 체관의 자세로 한 수 배우는 해가 되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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