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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Dec 12. 2023

어느 빵집

장인과 상인

부친과 함께 빵집을 계속 운영하던 큰아들은 소박하지만 나름의 빵맛을 자부하며 생계의 수단으로 빵을 만들었다. 그가 계속 빵을 만드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했지만, 빵으로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고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단지 그뿐이었다. 


빵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약간의 유명세가 있었지만 그 동네에 들르는 사람들의 알음알이 장소 정도였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서울서 내려온 뒤로는 소위 경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형과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저 빵을 잘 만들어 팔아도 큰 걱정 없이 잘 지내오지 않았냐는 형의 생각과 달리 동생은 사업의 대상으로 빵을 바라봤던 것이다.


빵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결국은 판매 매출이 중요하다고 동생은 주장한다. 그걸 위해 우선 상표등록을 하고, 공정을 규격화함과 동시에 공장화로 대량 생산체계를 구축하여 빵을 입소문이 아닌 광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하자고 형을 설득한다.  뿐만 아니라 도시의 명물로 만들기 위한 공무원들과의 협업까지 추진하자는 동생의 생각에 형은 고개를 흔든다. 그렇게 해서는 그 빵을 온전히 지켜내기 힘들다고 형은 생각한다. 


일일이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수작업으로 속을 채우는 방식으로 해야 제대로 된 빵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형의 주장에 동생은 한심하다는 듯이 형을 바라본다.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동생의 생각에 형은 무엇보다 맛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정성을 뺄 수 있냐며 얼굴을 붉히지만, 동생은 본인의 그림을 지울 생각이 없다. 


결국 동생은 구상한 사업에 돌입한다. 상표 도안을 만들고 등록하며 공격적인 판매방식으로 단시간에 일약 성공사례를 만든다. 지속적인 사업의 성공을 위해 담당 공무원의 동의를 이끌어내 동네를 넘어 시 전체에서 추진하는 대표상품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한다. 


나아가 동생은 빵의 품질 향상과 대중성을 위해 형이 만들던 빵의 레시피에서 단맛을 더 추가하고 원재료의 대량 구매와 생산의 기계화를 이점으로 원가절감을 통해 단가를 낮춘다. 수공업식의 아버지 때와 달리 세상은 바뀌었으며 더 넓은 시장을 향해 꿈을 크게 키우자고 동생은 형을 설득하려다 그만두었다. 형의 그릇은 그 정도라는 속삭임을 남기며.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형은 고개를 숙이지만 이젠 본인의 가게 유지가 급해졌다. 평생 만들던 빵을 접을 수는 없다. 오랜 단골들은 여전히 형의 가게를 찾았지만, 새로운 손님들은 형의 가게를 알지도 못했고, 굳이 형의 가게를 찾을 일도 없었다. 이미 동생이 힘껏 펼친 홍보에 더 눈길과 발길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형은 본인의 가게가 원조라고 강조하고 싶지만, 이젠 상표를 드러낼 수도 없다. 동생이 이미 등록한 상표라서 그 상표를 계속 사용할 수도 없었고, 동생이 비록 상표권을 주장하며 간판에서 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형은 그게 싫었다. 형은 아버지에서 본인으로,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빵가게의 그 정신을 이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안의 성씨를 따서 동생과는 다른 이름으로 간판을 내건다. 


같은 빵을 두고 경쟁 아닌 경쟁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형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고수하며 수작업의 빵을 계속 만든다. 동생이 바꾼 상품성 빵과는 다르지만 담백하고 깊은 맛을 유지하기로 한다. 여전히 그 허름한 가게에서 그 빵을 그렇게 만든다. 다행히 동생 보다 형의 빵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시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단맛에 대한 취향의 차이와 형제간의 힘의 논리에 의한 동정심과 그래도 원조를 선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형의 빵은 명맥을 유지한다. 같은 빵이라도 맛에는 그 깊이가 있다는 형의 자존심 섞인 말이 나중에 동생에게 전해진다.


장인이면서 상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상인이면서 장인의 정신을 가지는 게 참 쉽지 않다. 빵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면서 판매에 열을 올리는 동생을 천박하게 바라볼 형과 빵만 만드느라 세상물정 모르는 형을 답답하게 바라볼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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