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린 만큼 남쪽엔 겨울비가 왔다. 늦가을 심은 마늘, 양파가 잘 자라는지 걱정이라며 엄마는 밭에 가자고 채근한다. 늦잠 고프다는 말도 못 하고 동행이다.
젖은 밭은 발이 빠지고, 여름 무성하던 잡초에 낫질로는 허리가 뻐근하게 베어도 돌아서면 풀 자람이 한 키였다. 얼었다 풀린 땅이라 지금 삽질이다. 발본색원 없이는 내년 여름에 또 그 짓이리라. 이 겨울에 땅 위로 풀이 자라지 않았을 뿐이지, 땅 속엔 엉킨 잡초 뿌리가 한가득이다.
몇 번의 삽질로 잡초 뿌리를 뒤집다가 뭔가 꼬물거린다. 같이 노출된 지렁이들. 좀 미안하구먼 겨울잠 깨워서. 한편에는 다른 움직임도 보인다. 굼뜬 개구리들이 엉금 거린다. 부디 내 삽질에 다치지 않길 바란다. 얼마나 놀랬을까. 자다가 봉변이니.
음기가 깊어 극에 달하는 밤 긴 동지에 양기가 시작된다고 한다면 한 껏 무성한 그곳에서 상대적 시작이 일어나고 있음이라. 끝이 곧 시작이고 시작이 곧 끝이다. 그 끝과 시작에 너무 큰 의미를 둘 일은 아닌 거다. 돌고 돌아 물고 물리는 고리 모양으로, 시작 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끝 점이다. 끝은 가장 멀지만 바로 뒤에 있다. 딱 붙어있다. 뗄 수도 없다. 땅 끝에 서서 돌아서니 땅 시작인 것이다.
선을 그어 놓으니 이곳과 저곳이요, 내가 서 있으니 좌우요, 방향을 정해 놓으니 동쪽과 서쪽이지, 여전한 하루의 연속이다. 별 일 없이 무탈함이 행복이지 따로 행복의 기준이 있으랴. 그래도 세 밑이요, 그래도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