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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Dec 27. 2023

겨울 해바라기

바람이 고인 담장에 쪼그려 앉아

혹한에 한기는 건조한 밤의 호흡을 타고 든다

감기로 시달리다 며칠을 앓더니

속으로 전이된 냉기는 이내 소화불량을 야기한다

나이 들고 허한 거다


예전 산골에서 보낸 겨울의 여러 날 

꺼진 연탄불로 밤새 식은 몸을

겨울 햇살로 데우려 등지고 쬐는 볕이 더 추웠다

한기가 깊게 파고든 거다


딴에 넋두리 친구 위한답시고 음주로 밤샌 날들

동틀 새벽 눈바람에 온몸 떨면서 집으로 가는 길

첫 차가 지나가고 누군가는 길거리를 쓸고 있다

미안한 방황을 젊음의 열정이라 억지 주장했던


몸은 기억한다

시달린 흔적이 흩어지지 않고 남았으면

오래전 삭았을 법한데 질기게 재생한다

현재의 몸부림으로

......................................

동네 담벼락 아래 시들어 마른 누런 잡초가 건조하게 깔려있고

벽에 기대어 조각 볕 쬐려 앉으니 먼저 누운 고양이는 도망이 굼뜨다

공기는 차가워도 바람이 머물러 시간이 멈춘 듯 따뜻하게

졸린 눈감고 쪼그려 앉아 낯 그을려도 이대로 한가롭다


덧없다는 말조차도 이젠 덧없어 보이고

비바람 추위 피하고 굶지 않는 정도면 족할까

칭찬도 비난도 없이 지내는 맨날이 그럭저럭 하다 


여전히 궁금하고 더 갖고 싶음은 아직 채울 게 있음이라

가진 것 뺏기지 않으려 움켜쥔 손아귀가 뻑뻑하겠다

양손과 입 안 가득해도 뒤돌아 남 가진 거 엿보는 꼴이 참


늙어 힘은 없어도 아픈 데는 없다는 돌아가신 구순 넘긴 선생님 말씀이

해바라기 하는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 든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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