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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Dec 19. 2023

무표정 응시

무의미한 나름의 적응

진료실에 가끔. 혼자보다는 보호자를 동반한다. 나의 질문에 옆에 앉은 당사자는 앞만 보고 있고 대부분 대답은 건너 보호자가 대신한다. 보호자 답변이 제대로일 가 없을 텐데 본인은 입을 열지 않는다.


이런 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던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혹 상태를 부모가 짐작하여 처리해 온 것 같은, 지금껏 그래 왔으니까 새삼 뭐 별 다를 것도 없다는 본인 무대응 반응.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의 일부일지 몰라도 나는 이 익숙함이 무겁다. 공기가 막혀있고 햇볕이 뿌옇게 먼지가 떠돈다. 밖에서 보면 정상적이고 잘 꾸며진 쇼윈도에 내부는 삐딱선 마네킹에 고리가 덜 채워진 마무리.


 동반자가 필요할 만큼 어리다면 몰라도, 스물을 넘긴 멀쩡한 자식을 대신해 보호자가 대리 답변을 한다면, 부모는 아직 그 자식을 성인으로 대하지 않고 있거나, 자식이 아직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고 있거나, 그 틀에서 안주하는 게 더 편해서 아직도 관계를 그렇게 유지하는 경우 거나.


그렇든 말든 원장 앞에 앉은 당사자가 진료를 받는 자리에서, 본인을 위한 질문에 본인이 침묵을 한다면 유감이다. 더구나 대리 답변을 흘리듯 무표정에 외면 눈빛이면,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 다시 관찰을 한다.


멍하니 초점을 잃은 눈빛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눈을 응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변의 어느 한 점을 말없이 보고만 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화난 얼굴도 아니고 굳은 얼굴도 아니다. 그냥 무표정이다. 뭘 물어도 네, 아니요의 단답형. 부연 설명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님을 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많은 변수의 경우를 일일이 쪼개어 다시 물을 수는 없다. 그는 뭘 하고 싶은 걸까? 그의 의도나 의지는 뭘까? 이런 내용 파악도 궁금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닫고 있는 거다.


본인만 할 수 있는 물음에도 보호자가 앞서 답하고, 디테일이 필요한 답변에 대리 답변이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본인은 수정하거나 바로잡을 생각이 없는지 말이 없다. 자신의 얘기를 본인만 빼고 말들이 많다. 맞다거나 틀리다거나 덧붙여 말이 있음 직한데 침묵이다.


보호자에게 가만 계시라 손짓으로 물리고, 본인의 답변을 직접 듣고 싶다고 기다려도 시간만 흐른다. 나의 답답함은 후순위다. 숨어서 빗장을 지른 그의 무반응으로는 한 발짝도 진도를 낼 수 없다. 오직 그 만이 키를 쥐고 있다. 뭔가 웅크리고 있는 덩어리를 덮어놓고 있구나 싶은데 그는 입술을 다물고 있다.


보호자를 대기실로 보내고 진료실에 본인만 남아 다시 불편하게 없는지 물어본다. 별 말이 없다. 보호자만 따로 불러 묻는다. 보호자는 쟤가 원래 착한데, 낯선 환경에서 낯가림이 있어서, 공부도 잘해서 지금 의대생인데, 엄마 말도 잘 듣고 나도 본인을 위해 열심히 챙기는데, 친구들도 많은데라는 식의 답변이 길다. 당사자가 아닌 보호자의 시각에서 얘기들이다. 엄마가 원하는 데로 커온 건 아닌가요?


예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데 어둡다면,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온 느낌이 강하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말하거나 관철시켜 본 적 없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할 수 있다. 불편한 기운이 불안하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전가하려 해 온 무리수가 아닐까. 그걸 자신의 꿈으로 이입하여 대리삶에 진저리 치며 자신을 잃어버렸을까. 방황을 해본 적이 없으니, 방향을 다시 잡을 수도 없다. 시키는 대리삶을 사느라.


적나라하게 드러내 밝히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혼자서 눈물 나게 해야 할 일이다. 다만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를 표현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도 침묵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걷기를 꾸준히 해보고, 그 활동이 익숙해지면 다시 만나자고 하고 보낸다.


한의원에 진료를 받고, 치료를 하는 등의 의료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닌데, 보호자는 이게 당사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 중 하나라고 여기나 보다. 그렇게 손 붙들려 왔나 싶다. 그 힘의 무게를 거부하기 쉽지 않았던가 보다. 스스로 하도록 놔주기에 안쓰럽고 부족할 거란 노파심이 마음껏 휘젓는 손짓의 옥죔이 될까 봐, 몇 번의 날갯짓 시도가 꺾여 자포자기한 무표정이 굳어질까 봐 편치 않다.


꽉 짜인 틀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매뉴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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