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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an 30. 2024

무딘 힘

타고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대학 동아리 신입생 모집의 한 부스를 차지하고 있던 풍물놀이패. 쨍째쟁쟁 쿵짜작. 시끄러운 소리에 누구나 한 번씩 고개를 돌려보게 된다. 놀이패에 가입한 이들은 사물놀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으레 그런 곳에 가면 즐길 수 있는 술자리가 더 끌려 명부를 넣기도 한다.


신입 회원 환영회부터 시끌벅적하고, 우리 것은 소중하며, 우리 전통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중 가장 연배가 높은 선배가 막걸리 잔을 들고 일어서서 일장 설을 푼다. 


선배는 팔을 휘이 흔들며, 이때 한바탕 휘몰아치는 바람이 주왕 불면(징) 하늘에선 부부북하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다(북) 쿠광 쩌정하는 천둥 번개가 내리꽂으면서(꽹과리) 바짝 마른 땅바닥에 장대비가 따다 다닥 먼지가 휘날리게 가뭄을 때리는구나(장구).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잔을 쭉 들이켠다. 입술을 훔치며 허여, 몇 달의 가뭄과 목마름이 일시에 쏴하고 내리는 비에 해갈되면 주름진 농부는 어깨를 들썩거리고, 촌로는 곰방대를 쭉 빨며 빙긋이 웃는구나 야. 얼쑤.


선배의 얼쑤 소리에 맞춰 모두들 손으로 입으로 장단을 치고,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으쌰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사물을 들지도 쥐지도 않은 채 흥겹게들 논다. 주변 손님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이쯤 되면 다른 테이블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자기들 세를 과시하면, 놀이패들은 더 큰 소리로 맞짱을 뜨듯이 소리를 지르다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 춤추다 뛰기도 한다. 모인 사람들이 질세라 각각 테이블에서 저마다의 노래로 목청을 높인다. 사방이 시끄러워 대화자체가 안 될 때쯤이면 지켜보던 주인장은 카세트에 최대 볼륨을 높여 노래를 틀어 그 모든 소음을 덮는다. 서로의 노랫소리가 스피크에 묻히고 기성 소리만 남으면 그제사 소란은 멎고 주인장은 장내 정리를 끝냈음에 만족하고 카세트를 끈다.


처음 신입이야 선배들 눈치도 보고, 어떻게 하는지 배우려는 열정도 가득하지만, 1년 정도 적응을 하고 나면 장단에도 익숙해지고, 공연도 하면서 재미를 느끼다, 2~3년 정도 지나면서 군대를 가기도 하고 슬슬 각자의 삶에 공부에 앞으로의 걱정과 준비로 풍물패 모임에서 자리가 점점 뜸해진다. 


3~4년 되면서 대부분 주전을 내려놓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데, 예의 그 선배는 군제대를 하고 나서도 졸업할 때까지 풍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물놀이의 악기를 배우고 다루는 순서가 따로 정해져 있진 않지만, 졸업 때까지 사물놀이패에 었었던 그 선배는 후배들의 기억에 꽹과리를 든 적이 없었다. 


손놀림과 장단으로 풍물을 조율하는 상쇠로서 꽹과리를 칠 정도가 되면 풍물패 전체를 이끈다. 나름 학년도 높지만, 마냥 풍물을 할 수만 없다. 때가 되면 물려줄 후배를 물색하면서 물러날 때를 저울질한다. 처음 소고에서 시작하여 들고 치는 연습이 익숙해지면 북과 북채를 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장구를 조금씩 배워나간다. 걔 중에 제법 장단을 맞추고, 재주가 있는 후배를 눈여겨봐 뒀다가 상쇠가 슬쩍 떠본다. 어때 해볼래? 선배의 호의에 본인의 호기심에 풍물패를 이끌 욕심에 넘어가 조금씩 꽹과리를 배우게 된다. 나중 익숙해지면 선후배가 번갈아 맞장단을 치며 가늠해 보고 조금씩 맡기기도 하면서 자리를 물려주는 게 일반인데, 그 선배는 상쇠를 맡아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풍물패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놀이패를 너무 좋아해서일까?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그 선배는 친절하고 근엄하게 소고와 북을 가르친다. 그렇게 몇 달을 이끌다 보면 어느 순간 체 1년도 안된 후배의 실력이 선배를 넘는다. 표현은 안 하지만 본인보다 더 나은 선생님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그 선배는 장구 수업의 이론과 약간의 장단 맞추기를 하다 다른 후배에게 신입을 넘긴다. 


연차를 두고 후배들이 쌓이고, 후배가 상쇠가 되어 사물을 이끌 때도 선배는 묵묵히 북을 친다. 신입 회원 모집이 끝나고 서열이 정해질 무렵, 그 선배는 학번으로 가장 상석에 있지만 풍물패 전체를 이끄는 자리에는 물러나 있다.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을 위로 삼아 북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꽹과리와 장구가 잘 어울리도록 터를 잡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북이 열어줘야 한다며.


처음 낯설고 어설픈 후배를 가르치다 점점 박자를 맞추고 제법 본새를 잡아가는 후배들을 키우는 보람도 잠시, 어느 순간 후배들이 그 선배를 앞서가는구나란 생각이 든 시점에서는 시기와 불안감이 들만도 했다. 경계심도 생겼으리라. 무서운 속도로 커가는 후배들을 보며 초조감도 들었으리라. 후배들이 본인을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불쾌감도 있지 않았을까? 


음치도 있지만, 박자치도 있는가 보다고 후배들이 뒤어서 구시렁거려도 그 선배는 놀이패 모임이나 연습 때가 되면 빠지지 않고 참가했고, 연습 중에는 연신 흥이 났는가 보다. 가끔은 후배 너희들이 잘 되는 게 더 좋다며. 뒷물이 아랫물을 밀어줘서 강물이 계속 흐르는 것이라며 웃지만, 그 선배에 앞서 놀이패를 떠나는 후배들을 보면서도 칭찬이다. 네 장구 치는 게 일품인데 이제 잘 못 보게 됐다며.


입학해서 졸업 때까지 풍물패에 몸담았던 그 선배가 오히려 드문 경우라고 말들 한다. 이제 졸업을 하고 떠나는 그 선배는 타고난 실력자도 뛰어난 능력자도 아니었지만, 그 선배를 떠나보내는 후배들은 그래도 아쉬워하며 운동장 한편에 모여 다 같이 선배와 마지막 풍물 연습을 한다. 끝내 꽹과리를 잡아보지 못한 그 선배는 최근 몇 번 해봤다며 징을 든다. 본인은 아직도 배워야 할게 많다며, 시골 고향 충청도에 내려가서는 장구도 다시 도전해 보련다고.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된다. 본인에게는 아직 진행형이라며. 어쩌면 풍물을 가장 사랑한 한 사람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다 익히지 못한 가락을 연습하느라 손에서 채를 놓지 못하고 있다. 그에겐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너머를 보지 못했노라며. 우공이산이려나. 무디고 더디고 엉성한, 그 부단한 아름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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