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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12. 2024

두꺼비 흙집

웅크려 앉아 집짓기 상상

헌 집 줄게 새집 달라는 말에 두꺼비는 좋아할까? 쥔 주먹 위로 흙더미를 다지면서 두꺼비 집을 짓는다. 이 흙집이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자그마한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상상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언덕 아래에 터를 잡는다. 바람이 머물고, 햇볕을 머금고, 빗물이 젖어 내리는 곳에 시야가 트인 집을 그려본다. 이런 집은 자연이 그린 능선을 거스르지 않아 멀리서 보면 집이 그 연장선에 있다. 어찌 보면 없는 듯 보이기도 하고, 땅에 바짝 엎드려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음택의 명당으로 금계포란형을 꼽고, 양택의 기준으로 배산임수 자리를 좋게 본다. 그냥 볕 잘 들고, 추위를 막아주며, 바람 잘 통하고, 조용하며, 물난리 없는 곳이 음택이든 양택이든 좋은 곳이란 말이다. 도시에서 빽빽하고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층층이 쌓인 건물에 겹겹이 사는 우리들에겐 꿈같은 얘기지만,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이 허공 같은 나무에 둥지를 트는 것이 당연하고, 물에서 생활하는 수달이 물가에 집을 짓는 게 당연하듯이,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해 사는 사람은 흙에서 사는 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힘든 삽질로 허리가 아프고, 베어도 돌아서면 훌쩍 자라는 잡초의 모진 구석을 모르진 않지만, 그런 땅의 끈질기고 고집스러운 흙이기에 인간이 같이 섞여 살 만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태어났으니.


무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왜 굳이 흙으로 봉분을 쌓아 올렸을까. 표식이 필요하면 기둥이 될만한 나무 말뚝을 박을 수도 있고, 아니면 큰 돌을 옮겨놨을 수도 있는데, 왜 두꺼비 집을 짓듯 흙을 수북하게 덮었을까. 아마도 떠난 이가 태어난 곳이 흙이라서 다시 온 곳으로 가려고 그런 건 아닐까. 어쩜 흙의 온기가 유지되길 바라는 남은 이들의 마음일까. 흙에서 끝과 시작이 있듯 삶과 죽음의 연결이 되는 일상생활도 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고 일어나고 활동하고 숨 쉬는 곳으로.


가조도의 지평집이 그런 집이란 말을 듣고 한 번 가봤다. 해안가를 돌아 내려가는 언덕 왼편에 언뜻 눈에 잘 띄지 않고, 원래 있던 잡초가 지붕이 되어 집이 있는 줄 모를 정도다. 섬의 북단 끝에 위치하여 햇살이 방 안으로 들진 않지만, 누워 바다를 볼 수 있는 조용한 곳이다. 샤워실과 침대 외엔 아무것도 없이 단순하고 좋다. 식당이나 가게도 멀고, 주변 민가도 멀다. 두꺼비 집에 가깝다. 다만 주거 공간이 아닌 숙박 시설이다.


주먹 쥔 손을 빼내며 움막처럼 지어진 집에 조약돌이 드나들고 아이들은 마당을 만들며 논다. 두꺼비 집을 짓고 놀던 애들의 흙장난이 끝나고 남은 흔적은 지나가는 이들에 무너지고 흩어진다. 원래의 땅이 흙이 되어 흔적을 지운다. 한 때 잘 놀았으니 쓸려가는 모래성처럼 아쉬움도 없다.


땅에 가까운 두꺼비 흙집은 비바람이 지나가고 돌에 이끼가 끼며 썩은 나무 기둥에 버섯이 자란다. 흙집은 그렇게 진행 중인 과정의 집이다. 흙 속에 잠시 살다 가고 나면 다시 흙이 된다. 찾는 이가  오래된 반쯤 퇴락한 무덤처럼 평평한 흙이 된다.  어쩌면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있기도 한 집이다. 잘 쉬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집이다. 련이 남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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