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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Feb 25. 2024

말에 걸려

넘어지면 아직 멀다

미래

미래未來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 아니라 앞으로도 오지 않을 날이다. 올 수도 없다. 항상 미래니까. 오직 지금이라는 시간만 있다. 지금 이 순간을 나는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말도 이상하다. 그렇게 살아라고 하기 전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과거도 미래도 지금의 생각에서 떠올린 현재의 시간이다.


물컵

내가 컵을 들고 있다. 컵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어 컵을 든다. 내가 컵을 잡고 있지, 컵이 나를 잡고 있는 게 아니다. 컵은 나를 잡을 수 없다. 내가 컵을 잡는 순간 나는 컵에 잡혀있다. 컵을 잡으면 컵에 잡힌 것이다. 잡은 것도 잡힌 것도 나다. 놔라.


상대적

둘의 관계는 항상 상대적이다. 비교 대상이 정해지면 우위나 대소가 정해진다. 이런 관계에서 더 낫고 더 높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은 끝이 없다. 계속적인 비교 대상이 생긴다. 

그럼 상대적인의 반대말이 절대적인가? 절대적이라면 더 이상은 없음이고 반드시, 꼭 그러함을 내포한다. 끊임없는 세상에서 그런 게 있을까? 

상대적임의 반대는 상대가 없는 유일함이다. 하나뿐이면 비교 대상이 없다. 처음부터 그 하나뿐이었다면, 그 하나가 전체가 되는 것이요, 하나라는 말도 틀렸다. 하나밖에 없었다면 어떻게 하나뿐임을 알까? 유일하다는 말 자체가 다른 것은 없음이니 벌써 상대적 유무를 염두에 둔 말이다.


마감 임박

재고 소진을 위한 아우성이다. 빨리 마감하고 신상품을 내놓기 위한 재고 떨이다. 소외되고 손해 보고 뒤쳐질까 봐 조바심 내는 초조함의 상술이다. 임박한 건 내가 아니라 상대다. 대체품을 찾을 수도 있고, 다음을 기다리면 된다. 


지우개

원래의 물건에 다른 지저분한 것을 지워 깨끗하게 없애는 지우개는 그 지우개로 자신을 지울 수는 없다. 지우개로 지우개를 지울 수 없다. 손으로 다른 물건을 잡을 수는 있어도, 손으로 손을 쥘 수는 없다. 닿을 수도 없다. 


시공분리

공간의 움직임 없이 시간이 흐를 수 있을까? 전혀 움직임 없게 어느 한 곳을 계속 촬영한다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같은 장면이라면, 공간은 머문 체 시간만 흐른 것인가? 그 영상을 더 긴 시간으로 찍는다면 변화가 생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라. 짧은 시간이라 알아차릴 수 없을 뿐이다. 

반대로 시간의 흐름 없이 공간의 이동이 있을 수 있을까? 옮길 수도 없다.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곧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다. 시공은 같은 개념이다.


신의 영역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못하니 안 하면 된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하니 힘이 들고 무리가 따르고 애가 쓰인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 해도 잘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나중에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다. 그럼 그때 하면 된다. 


되고 안되고는 결과의 산물이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할 수 있어도,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 신의 영역에 도전함은 신이 되고 싶은 거다.


인식

사물을 인식함은 내가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물과 내가 떨어져 있으니 인식할 수 있다. 생김새를 알고 색깔을 구분하고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사물을 바라볼 수 있으므로 나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사물 그 자체라면 나는 사물을 인식할 수 없다. 사물과 내가 딱 붙어있거나 섞여 하나가 되어 있으면 나는 사물을 구분할 수가 없다. 내가 곧 사물이므로. 내가 사물과 분리되어 있고 떨어져 있으므로 나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내가 나를 인식하고 있다면, 이 몸의 움직임과 느낌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 몸은 내가 아닌 거다. 숨 쉬고 배고프고 아프고 걷고. 그럼 나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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