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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08. 2024

풀은 가볍게 산다

언제 어디든 조건에 따라

옮겨 심거나 씨앗을 뿌린 적 없어도 담장 아래 좁은 틈새 보이지도 않는 곳에 터를 잡는다. 며칠 전까지도 없었는데 어느새 싹을 내고 자란다. 비라도 내려 땅을 적시면 풀은 무성하게 자란다. 돌 틈에도 보도블록 사이에도 촘촘히 자란다.


뭉뚱그려 잡초라고 칭해지고, 함부로 취급받고, 밟히고 뽑히기 쉬워 사라질 위험을 알기에 왕성한 번식력으로 자손을 퍼뜨리고,  조건만 맞으면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강한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보다는 많은 양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꼭 올해 안에 정착한다는 목표도 없다.


한송이의 꽃에서 하나의 씨앗만 잉태하는 게 아니다. 무수한 씨앗을 품고 있다가 햇살에 톡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가늘고 가벼운 섬모들을 달고 바람결에 날아가가도 하고, 새의 먹이에서 배설물로, 지나가는 어떤 동물의 발치를 따라, 사람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퍼져나간다.


기약 없는 존재의 생존 유지 가능성만 품는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도 없고, 된다 안된다는 가능성 여부도 알지 못한다. 안된다면 아니라면 아쉽지만 그걸로 수용하고, 다음에 다른 곳에서 발아를 꿈꾼다. 그러다 운 좋게 혹 어딘가에서 싹을 내고 꽃을 피워도 가을 되면 여지없이 시들어 사라진다. 겨울 오기 전에 미리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양 자취를 감춘다.


1년생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그들의 지속력은 땅속에 많은 뿌리들을 얽어놓고 있기도 하고, 퍼뜨려진 씨앗에 정체성을 묻어둔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맨땅 곳곳에 풀이 자라고, 사람들이 원치 않는 곳에 돋아난 풀이라 여겨 성가셔하며 뽑히더라도, 심하면 제초제의 맹공을 받아 잠시 주춤하여 사라져도 풀은 다시 자란다.


유명하지도 않고, 꽃이나 향이 독특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무도 관심 없지만, 풀은 까다롭지도 않아서 어디서든 잘 크고 잘도 자란다. 아무 이름도 갖도 않고, 덧없이 내맡겨지듯 살아간다. 여기저기 흩어지고 의미 없는 나날들을 탈없이 잘 지낸다.


내세울 것 없고, 해야 할 일 없이 무던히 집착 없이 이렇게 지내다 그렇게 간다. 풀에게 이토록 쉬운 게 내게는 미치도록 어렵다. 울컥울컥 촉이 올라오듯 답답하기도 하고, 무가치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기도 하다.


가을 낙엽보다 봄풀의 겁 없음에 감탄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 겨울에 코빼기도 없던 것이, 시커멓게 자라 오르다, 때가 되면 거침없이 사라진다. 왔다감에 아무 흔적도 없다. 그리고 또 이어진다.


제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퍼뜨리는 자연이다. 어디서 어떻게 정착하고 자라고 커갈지, 다음세대를 이어갈지 걱정이 없다. 그렇게 산다. 계획 없어 보이지만 무계획의 깊은 뜻을 풀들에게서 본다. 그 가벼운 존재의 한없는 자유로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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