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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19. 2022

몰두

심각함에 빠지다

세상을 좀 더 가볍고 경쾌하게 살고 싶은데 심각하고 무겁다. 설렁설렁 얽매이지 않고 대충 그냥저냥이고 싶은데 자꾸만 생각에 빠진다.

대화를 하다 심각해진다면 뭔가에 걸린 것이다. 자신의 묵은 감정일 수도 있고,  맞다고 믿고 있는 확신에 거슬린 것이다. 크기가 클수록 반응도 격하다.

대화가 과하게 진지해지면, 나의 욕심과 사심이 작용한 경우 거나, 결과물에 대한 조급한 성과를 바라는 마음이 있거나,  상대를 내 생각대로 바꾸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어렸을 때의 상처나 아픔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한 번씩 울컥하고 올라오는 답답함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듯이  철학이나 심리학, 종교, 마음공부 등에 눈길이 간다. 결국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환기하거나, 나 스스로의 마음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목마름에 대한 해갈을 구하다 간혹 너무 빠져들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는 지인이 심리 상담 교사로 있는데,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그 내담자의 말과 내용에 감정의 이입 또는 전이로 힘들 때가 많고, 집중을 하다 보니 기운을 너무 소모하게 된다고 호소한 적 있다. 상담 과정이나 내용 등을 통해 내담자를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며, 위로하는 등 일련의 진행들에 과몰입으로 힘들어했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대화에 몰두하다 보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했으니 일이 끝나면 진이 빠져있다. 그다음 해야 할 일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과한 몰입은 과욕이다. '꼭'이란 생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든, 치료를 위해서 의지가 앞서는 경우다.  애를 더 쓰게 되고 욕심이 낀 경우라서 더욱 피로가 쌓이고 몸을 고갈시킨다.


진료상담을 할 때도 잘 들어주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지만, 말에 너무 집중하면 자칫 전체적 상황을 놓치기도 한다. 하여 가끔은 눈빛이 흔들리지는 유난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진 않는지 관찰해야 한다. 아픈 것에 대한 내용보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 환자의 상태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그의 표정이나 눈빛, 목소리나 동작, 몸짓 등의 변화들에 더 많은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말 아닌 말에 촉을 세워야 한다.


덜 집중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전체를 같이 살펴보려고 한다. 예를 들면 드라마를 보더라도 주인공 의 인물에도 관심을 갖고,  화면도 한 번씩 둘러본다. 또는 옆에서 드라마를 같이 보는 이의 표정도 가끔 살펴보는 식이다. 감정 이입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자기감정에도 쉽게 빠진다는 것이다. 파악이 목적인데 내면화가 되는 모양새다. 즉 상대를 통해 자기 세계에 빠져버린다.


자주 발목을 삐어 오는 이가 있었다. 길 걷다 자주 삔단다. 굽 높은 신발을 신는 것도 아닌데 잘 삔다. 한번 발목을 삐면 발목 관절이 약해져 다시 삘 확률이 높지만, 걸을 때 딴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길이 눈에 안 들어온다. 그러다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많다. 그 또한 또 다른 몰입이다.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긴장되어 굳어있고, 불면증에 불안과 소화장애, 편두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단다. 신경을 좀 많이 썼다고만 했다. 처음 약을 써도 별 차도가 없었다.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서 투정을 부린다. 다시 처방을 하면서 땀나는 운동을 같이 권했다.

분명 맥脈이 긴장되어있고 뭔가 펼쳐지지 않고 웅크린 기울氣鬱의 기운이 가득했기에, 위쪽으로 몰린 울체 된 기울을 풀면서 하기下氣 시키는 처방을 구성했었다. 이 정도의 처방이면 나름 몸이 가벼워질 법도 한데 그에게는 크게 효과가 없었단다. 그래서 다시 한약을 작방하여 약을 보냈다.

그 후로 소식이 없다가 나중에 그의 부인 내원하여 말하길 남편은 좋아졌단다. 약을 먹을 때 회사에서 승진 누락이 됐었고, 두 번째 약을 먹다가 재심에서 승진을 했단다.

짜증이 나어디에든 분풀이하고 싶, 탓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잘못이라. 몸 상태만 보고 증상만 보고 어떻게 치료할까 고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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