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Apr 23. 2022

나이의 규모

시세이 인장실 時世異 人將失

인간 수명 100세에 대한 언급이 2천여 년 전에도 있었다. 최근의 100세 시대 운운하는 게 새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에 놀랍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의 백세 얘기는 평균 수명을 말한 통계치를 언급한 것이라면, 그때의 백세는 나름 조화로운 삶을 살면 자연스레 살아지는 나이라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게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라. 예전의 사람 중에 세상사 자연의 운행 법칙을 안다고 할 만한 지도자知道者는 음양을 본받아 계절 변화에 맞춰 조화롭게 사는 일상이면 저절로 천수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욕망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활 과정으로 백세를 살게 된다는 게 차이일 수도 있다.


동양의 고전들은 대체로 첫 장에서 전체의 개념과 방향을 정해 설명이 이뤄지는 연역법을 택하여 씌여진다. 그래서 첫 장의 제1편에 그 책의 핵심사항을 제시하였기에 제1편을 잘 알면 그다음은 첫 장의 부연 설명들과 예시들로 이뤄진다.

한의학의 가장 오래된 고전이요 원전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제내경]이란 책은 <소문>과 <영추>로 나뉜다. <소문>은 한의학의 원리에 대한 책이고, <영추>는 한의학의 임상에 관한 책이다. 이러한 [황제내경]은 황제黃帝라는 성인이 그의 스승인 기백岐伯에게 묻고 답하는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황제내경]또한 두괄식의 연역 구성이라면 <소문> 소개되는 첫 대화 내용이 전체 요지를 함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연 황제의 첫 질문은 뭘까? 그 질문에 기백의 대답은 또 어떨까?


황제가 스승 기백에게 묻기를

"예전의 사람들은 나이가 백세를 지나도록 동작이 하나도 쇠하지 않고 튼튼했는데, 요즘 사람은 나이 반백세만 되어도 몸이 쇠약한 것은 세상이 바뀌어 달라져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본인의 조리와 섭생을 잘못해서 그러합니까"라고 묻는다. 지금도 나이 오십을 넘으면서 이곳저곳이 아프거나 불편한데 그때도 그런 일이 잦았는가 보다. 그런 쇠약함의 원인을 환경에서 찾을 것이냐 본인의 관리 소홀로 볼 것이냐의 질문이다. 이게 첫 질문이다. 근본적이며 심오한 원리나 법칙을 물을 만도 한데 어찌 보면 평범한 질문이다. 마치 금강경의 첫 구절 -세존께서 식사시간이 되어 걸식하고 돌아와서 식사를 끝내고 의발을 수습한 뒤 발 씻고 자리 깔고 앉으셨다.- 와 비슷한 느낌이다. 일상의 모든 게 깨달음이요 법이라는 무언의 가르침처럼.


기백의 답은 지금의 시대상황과 다른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다분히 의식주에 대한 재고를 제시한다. 그렇다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활동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별한 무엇을 따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 질문에 그 대답 같다. 다만 그 일반적이고 평범한, 누구나 매일 겪는 일상 속에 그 해법이 있음을 강조한다. 똑같은 의식주에서 무리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을 기본으로 일컫는다. 어찌 보면 시시하다. 막상 치료 현장에서도 그런 먹고 자는 것의 중요성을 환자들에 이르면 가끔 뭐 별 것도 없네의 반응이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행동하며 매일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기백의 답변 내용을 풀어서 보면 다음과 같다.

잘 먹는다는 것에서 음식을 먹는 태도를 강조한다. 뭘 먹느냐 보다는 적당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먹는 절제된 식습관으로 식음유절食飮有節을 말한다. 수면과 활동에 있어서도 항상 일정한 기거유상起居有常의 떳떳함을 말하고, 덧붙여 피로를 누적시키는 헛수고를 짓지 않도록 불망작노不妄作勞를 권한다. 그리하면 몸과 정신이 온전하여 천수를 누릴 수 있음이랴. 이러한 생활 습관의 중요성으로 그 대답을 갈음한다.


얼마 전 만난 무달형님은 여기에 평정심을 강조한다. 기백의 첫 답변 말미에 염담허무恬憺虛無란 용어가 있다. '편안하고 담담하고 비우고 없애라'는 뜻으로 이 염담허무를 실천하면 생명력이 꽉 차서 정기신이 안으로 채워져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다.

욕심을 적게 내고, 감정에 시달리지 않으며, 매일 할 일들을 무리하지 않고 지내면 되지 않냐는 말이다.


환갑이 넘은 그는 이제 반 세월을 살았단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무달형님은 120세까지 버티는 삶을 준비하고 있단다. 분명 단순한 생명연장이나 숫자의 늘임은 아닐 터. 그는 학술적 성과나 후진 양성 같은 일도 좋은 일이지만, 본인의 삶을 몸으로 실천해 내는 것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어쩌면 이게 더 확실한 표본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부끄럽고, 대단하고, 한편으론 노욕 같기도 하다가 무섭다는 느낌도 들었다. 몸소 살아내겠다는 말에 그의 평소 생활을 잘 아는 터라 그래 어쩌면 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앞으로 남은 세월이니, 돈이 얼마 필요하다느니, 취미나 교류, 운동 등의 얘기들을 많이 한다. 어쩌면 늙고 죽어감에 대한 비라 할 만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이 짙다. 무달형님의 말이 지켜질지 아닐지는 몰라도 그 의연함에 비하면 소소한 느낌이다.


살아지는 대로 살 거라는 생각만 하다 얼마를 살아낼까 생각을 하니.




작가의 이전글 몰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