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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Nov 21. 2024

방광이선

가려져 더 깊은

얼굴에 어둠과 습기가 지치고 쳐져 보인다. 마르고 건조한 피부에 웃음이 어색하다. 그와의 만남은 우중충하게 리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을 외면하거나 낙담하여 등지고 돌아서버릴 것 같진 않다. 홀로 내던져져 고립되고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도 그에게 밑바닥은 익숙한 출발점이다. 제로 베이스. 처음부터 뭘 가지거나 갖추고 시작한 적 없는, 맨 손의 맨 몸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야 하는 불쾌한 익숙함이다.


갓난아이 때 어렴풋한 기억. 왕래도 없던 친척집으로 보내졌다 다시 돌아온 집에서 어머니는 배가 불렀다. 아버지는 밤늦게 일하고 집에 와선 잠만 자고 새벽에 다시 출근하는 바쁜 생활이었기에 그를 볼 시간도 얘기할 여유도 없었다. 밑으로 동생들이 늘면서 집안이 분주함에도 그의 방엔 선득거냉기가 가시질 않았고, 크면서는 비염을 달고 살았으며, 물에 밥 말아 김치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아 영양이 부실했다. 지금도 그가 추위에 민감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용과 체념의 단어 의미를 어려서부터 어렴풋 느끼는 시절을 보낸다.


어느 날 걸음걸이가 어색한 동생이 포경수술을 받은 걸 알고 놀란다. 이건 뭐지? 사춘기가 지난 그에겐 부모로부터 포경의 의미나 수술의 필요성에 대한 아무 언급이 없었는데 동생이 먼저 경험을 한다.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라서, 어쩌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자율에 맡긴 걸까? 친구들 중에 간혹 수술한 경우가 있어도 그게 본인에게도 해당되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질 못한 터라. 누락되고 생략되고 있구나 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거쳐야 할 과정이 건너뛰어 넘어간 책장처럼.


그의 신체적 활력이 가장 좋았던 때가 군 제대할 무렵이라고. 나이도 젊었지만 그땐 살도 오르고, 의지력도 강했다고 한다. 규칙적 생활과 식사가 좋았다니 그동안 그의 삶이 그렇지 못했음의 반증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바쁘게 직장을 구하고,  얼떨결에 결혼을 한다. 삶에 중요한 변곡점들에 그는 배제되어 겉돈다. 하고 싶어 선택한 직업이 아니었고,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다.


결혼 전까지는 번 돈을 본가에 보태느라 모으지 못했고, 나이 차고 떠밀려 결혼해서 애 낳고는 생활비가 빠듯했다. 사랑이 없으면 정情이라 있어야 했는데, 장밋빛 미래라도 제시했어야 했는지, 거짓 희망조차 보여주지 못해서일까. 변변치 않은 경제생활과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부부싸움, 가출, 이혼으로 이어져버렸다. 아들만 떠 남기고.


착하지만 어리숙해 보이고, 성실하지만 군말 없는 그를 주변에선 만만하게 봤을까? 부당한 일을 대하거나 모함에 빠져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식의 그의 불분명한 의사 표현은 그를 이쪽도 저쪽도 아닌 또는 이쪽 편에선 저쪽으로, 저쪽 편에선 이쪽이라며 양방향의 공격 대상이 됐다. 능력도 안되지만 중재자의 역할이라도 했으면 할 말이라도 있을 텐데 , 이쪽저쪽에서 그에게 말을 걸어와 들어준 것뿐인데, 그에겐 이게 아닌데라고 하면서 사건에 휘말린다. 일이 끝나도, 잘잘못이 가려져도, 무마된 일의 결과들은 그에게 상처만 남긴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데, 날 그냥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주변에선 자꾸 건드린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만 못된 놈이 되고.


어머니 장례식에 문상온 먼 친척에게서 뜬금없는 말이 들린다. 그때 네 생모가 몸도 풀기 전에 일 나가서 사고 나지 않고 살아 있었으면. 새끼 함 잘 키워보고 싶다고. 참 성실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는데.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선 듣지 못했던 얘기들. 손아래 동생들이 더 살찐 이유를 이해하기엔 하늘이 너무 맑았다.


아들은 그의 생인손이다. 흠 없이 키워보려 애써도 채워지지 않을 엄마의 빈자리. 능력 없는 본인에 대한 자책. 결핍처럼 궁핍처럼 어쩔 방법 없이 밀려오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을 역이용한 것일까?  혹시나 주눅 들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아들놈은 삐뚤 하게 받아들인다. 학창 시절부터 숱하게 말썽을 피워 경찰서로 달려가게 했다. 놈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구직할 생각도 없이 그의 삶을 갉아먹는다. 카드회사는 승낙하지도 않은 청구서를 그에게 내민다.


찌뿌둥. 밑바닥이 오히려 익숙하다고 하지만 눅눅하게 무겁다. 찐득이처럼 끈적임이 그의 발에도 몸에도 달라붙어 엉긴다. 우연이니 필연이니 그런 게 있을까? 퉁쳐서 모든 게 인연이려니 넘기려 해도 목에 걸린 가래처럼 답답하다. 무엇이 현재의 나를 지배하고 영향을 미치는 걸까 묻고 싶다. 질문만 있고 답은 없어 보인다. 그냥 일이 일어난 거고 진행되다 사라진다. 그냥 그런 거다. 알아도 그런 거고, 몰라도 그런 거다.


등부위의 방광경락에는 방광 1선과 방광 2선이 있다. 척추 기립근은 방광 1선에 흔히 해당된다. 과도한 노동이나 장시간 근육이 긴장되어 통증을 유발하는 부위는 방광 1선이다. 그러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만성적 근피로가 누적되어 방광 2선에 숨는다. 검사상 드러나거나 체크가 되지 않지만, 쌓인 피로가 한계를 넘으면 뜬금없이 심한 통증이 유발된다. 평소 늘 하던 동작인데 그날따라 꼼짝 못 할 통증이 콱하고 번개 치듯 찌릿하게 몸을 꽉 움켜쥔다. 숨마저 뺏는다. 깊은 들숨에도 욱하고 통증이 나타나서 호흡이 겨우겨우 조심스럽다. 방광이선의 독한 발현이다.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못한, 이도저도 아닌 모양으로. 어정쩡. 어쩌면 우린 늘 그 어중간한 상태의 연결선상일지도 모른다. 결론 나지 않은 진행 과정들이 모호하게 흘러간다. 시나브로 파노라마처럼 변해가는 게 자연인데, 굳이 똑딱 분간을 지으려 한다. 기준에 따라 달라짐을 알아도 구분의 선명함에 편안해한다.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존재는 없다. 제발 건들지 말고 놔두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길다. 그렇게 일선에 나서지 못하는 이선이 있다. 정해지지 않아 흐려 보이지만, 숨어있어 잘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나름의 위치에 서있다. 방광이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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