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매 주공아파트 2

당연함이 불편해지는

by 노월

경로당파를 분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로당파 사람들에 지자체에서 나오는 공적 지원이 훨씬 많이 이뤄지고 있어도) 엄마는 공원파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린다. 못 보던 얼굴인데 어서 오소. 이 근처 사요? 몇 홉니까? 여기 햇볕이 따뜨하니 일로 오소. 새로운 이가 나타나면 할머니들은 그를 불러 곁에 앉히며 서로 인사를 하고 인사를 나눈다. 딱히 상하의 구분은 없지만 나이와 친소로 다시 소구분이 이뤄질 뿐이다.


몇 해를 보내면서 엄마는 필요한 병원을 찾고, 옷가지를 사러 가는 곳을 알아보고, 장을 볼 때 어디서 뭘 살 지 정해서 나름 장소 파악을 끝낸다. 노인 유모차를 앞세워 동네 여기저기 밀고 다닌다. 가끔 유모차가 삐걱거려 내게 수리를 맡기기도 하고, 마스크에 장갑을 끼고 새벽을 나서면서 커피숍에서 내놓은 커피찌꺼기를 유모차에 싣기도 한다. 거름에 쓸 요량으로.


까다롭고 부지런함으로 몸을 쉼 없이 움직인다. 유달리 깔끔하고 가만있질 못하는 성격은 음식이든 청소든 가리지 않지만 나이 들면서 관절통이 있고 후각과 미각의 예민함이 예전 같지는 않아도 여전히 몸에 밴 그 특징은 어떤 식으로 남아있다. 한 때는 그런 활동이 성 가셔 보이고 싫더니 지금은 엄마의 그런 모습이 바꿀 수도 바뀌지도 않지만 그 나름의 개성 있는 부분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배가 고파도 사 먹는 된장은 도저히 입에 맞지 않아서 못 먹으니 직접 담글 수밖에 없다며 묵은 된장을 지킨다. 해콩을 사서 찌고 각을 잡아 메주를 만들어 짚에 매달아 말린다. 작년에는 아예 콩을 심어 키워서 메주를 담으려 했지만, 다행히 콩농사가 형편없어 직접 콩을 수확해서 메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접었지만, 주변 농사짓는 지인에 메주콩을 사서 삶는 일은 아직도 한다. 농사가 그리 쉬울까.


장아찌 담그는 일도 많다. 깻잎 콩잎도 그렇지만 팥잎까지 장아찌를 담아 내게 건네면서 팥잎장아찌가 몰라서 그렇지 아주 부드럽다고 한다. 한 번은 찐쌀로 강정을 만들더니 먹어보라고 봉투를 건넨다. 귀찮게 뭐 이런 것까지 하냐고 물으면 이 고소한 맛이 뻥튀기 쌀강정으로는 맛이 안 나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노라고. 주변에 자랑 겸 나눠먹는다. 옆 집이 먹어보고는 만드는 법을 궁금해해서 일러줬는데 이번엔 아예 만들어 달라고 손을 내민다. 본인은 도저히 그 맛과 모양이 안 나온다며 부탁한다. 내 몸도 아프고 힘들다 딴청이면서 은근 도울 상황을 즐기는가 싶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도 눈에 익숙해지면서 누가 몇 호에 살고, 나이가 어떻고, 자식이 몇이며 뭘 하는지 등의 파악이 손을 꼽으며 이뤄진다. 공원파에서 햇살과 바람을 따라 모여든 노인들은 다시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집으로 초청하여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친해진다.


내가 엄마 집 거실에 앉자마자 세상 참 신기하다며 엄마는 말을 꺼낸다. 아파트 내에 사는 이웃 중에 나랑 한날한시에 태어난 동갑내기를 만났다고. 나이도 그렇지만 생일까지 같은 사람을 그것도 둘씩이나. 살아온 여정이 다르고, 처지도 다르지만, 지금 이곳에서 세 사람은 같은 생일이다. 한 사람은 허리와 무릎을 수술했고 진통제로 버티며, 또 한 사람은 수술은 안 했지만 퇴행성 관절통으로 걷기가 힘들고, 또 한 사람은 이 나이에도 허리 펴고 걸을 뿐만 아니라 일도 하러 다닌다. 이들은 설날이 있기 일주일 전날이 그들의 귀빠진 날이니 같이 맛난 걸 먹으러 가기로 했단다.


위층에는 아흔 넘은 할머니가 사는데 여럿 같이 볕을 쬐다가 어릴 적 기억 가물한 일본말이 엄마 입에서 무심결에 나왔던가 보다. 아흔 할머니는 즉각 그 말을 받아 일본어 통문장으로 말하며 이런 말을 하려고 했는지엄마에게 되물어 같이 듣던 주변인들을 놀라게 했다. 엄마는 겨우 더듬더듬 들리는 몇 단어에 맞는 거 같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은 그 해 겨울에 일본을 떠나라며 강제 추방을 당한다. 조선인은 조선땅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으로 가족 모두 연락선을 탔을 때가 일곱 살이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아흔 할머니도 한반도로 넘어올 때 열세 살이었단다. 어려서 배운 실력이 아흔을 넘은 기억에 남았다며. 둘은 가끔 만나 아흔 할머니는 엄마에게 일본말을 조금씩 가르쳐주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가 담소를 나누기도 하며 친해진다.


해방되고, 육이오 겪고, 보릿고개 지나는 메마른 삶에서 자식들 키우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았던 그 시절을 얘기하며 서로 그땐 그랬지라며. 이 나이 들면 흐려진 기억이 드물게 떠오르지만 어렸을 때 배운 말이나 강하게 인상 찍힌 추억은 남는다며. 세월이 지나도 그건 남나 봐.


코로나 예방주사 후유증으로 치아가 몽땅 빠지는 등의 곤욕을 크게 치른 엄마는 최근 유행하는 독감으로 예방주사 맞으러 오라는 보건소 문자를 받고 내게 묻는다. 그거 해야 하냐고. 주변에 보니 예방주사 맞아도 독감 걸리더구먼, 안 맞으면 안 되냐고 고개를 잘레 흔든다. 참 답하기 곤란하다. 그럼, 잘 때 방에 불 넣고, 한 번씩 목욕탕 가고, 밥 잘 챙겨 먹고, 컨디션 나쁘면 언제든 내게 오라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유행성은 피하기 힘들다.


작년 봄에 아흔 할머니가 독감에 걸렸었는데, 올 겨울 한 달 전에도 독감으로 막내아들과 병원을 갔다는 소식이 있더니 그 길로 안 오신다. 그 할매는 돌아가시는 복도 많지. 나보다 더 잘 걸어 다니셨는데 그랬단다. 친하게 지냈는데 그렇게 가버리니 아쉽고, 한 편 그 연세에 그렇게 한 달여 길지 않게 고생하고 가시니 다행이지. 아흔 할매는 잃어버린 큰 애가 있었는데 온 데를 다 찾아도 없어 결국 못 찾은 게 맘에 걸린다고 하더구먼, 일본말도 많이 가르쳐주고 친하게 지냈는데 그렇게 됐다니 이제 섭섭하게 됐다고. 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처럼 갈 때 덜 시달리고 갔으면 좋겠구먼, 자는 잠에.

엄마, 갈 때 가더라도 내게 이제 간다는 말은 꼭 하고 가라고 하니, 엄마가 뿌옇게 웃는다.

그래 잘 있어라, 아프지 말고.

누가 지금 말하라고 하나, 혹 가게 되거든 갈 때 그때 인사하라고 했지, 벌써 무슨 안녕이고?

나는 이제 언제 가도 미련 없다. 내일 갈지 모레 갈지 누가 알겠나. 미리 인사하는 거지.

웃는 얼굴에 잡은 손이 건조하고 거칠하다.


오고 감은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게 당연한데, 당연한 게 불편하다. 이 아파트에 앞으로도 자연스러운 당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 동갑 세 명의 만남에 봉투를 이불 밑에 슬쩍 밀어 넣고 나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참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