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을 일으켜 스스로 알게
당장 풀어야 한 문제가 있었다. 여러 변수와 가능성을 따져보고 생각을 굴려보아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고, 이건가 싶은 것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 번의 처방에서 큰 이상은 없었지만 뚜렷한 가시적 효과나 호전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없고, 답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방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모임이 끝나자마자 형님을 붙들고 묻는다.
형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체를 보면 방향의 틀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친절하고 포괄적인 답변은 전혀 현실성 없는 말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하나마나한 답이다. 구체적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까지의 나름 시도를 해봐도 모르겠다고 문의를 했으면, 얼마나 답답해서 물었을까 하고 친절히 설명해 줄 것이지 저렇게 폭넓은 답변이면 알아서 해라는 말이다. 콕 집어내듯 명확하고 분명한 방향을 말해줘야 알아먹기도 하고 속이 시원할 텐데, 고작 한다는 답변이 전체를 보라고 그렇게 방향을 잡으라고?
아니,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데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걸 일러주셔야지요.
가벼운 건 위로 올라가고, 무거운 건 가라앉기 마련이지. 그걸 기준으로 해봐.
정말 내가 이런 사람을 믿었나? 햇볕은 밝고 그림자는 어둡다랑 뭐가 다른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기운을 느낀다. 말을 하질 말든지. 혼자서 씩씩거린다.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말걸 그랬나 보다. 기껏 하는 얘기가 너무나 상식적이고 누구나 아는 얘기라면 의미가 없다. 무시당하고 멸시받은 느낌이다.
밤 새 고민을 했겠다. 결국 내놓은 처방으로 슬금슬금 완화되었는지 어떤지 기억은 없다. 그의 설명이 가끔 생각나는 것은 나도 누군가 후배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할 밖에 없음을 느낀다. 그의 행동과 말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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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과 향엄의 얘기다. 같은 스승밑에서 배우다 위산이 먼저 깨치고 떠난다. 위산의 가르침으로 그의 제자 앙산 또한 깨닫는다. 향엄 입장에서는 미칠 지경이다. 같이 배워도 몰라 답답했는데, 도반의 제자까지도 그렇게 깨달았는데, 그럼 나는 뭔가? 위산 입장에서도 안타깝다. 향엄은 이제 물불 가릴 게 없다. 위산에게 진리를 물어 그 답을 구한다.
네가 얼마나 명석하고 경전에 조예가 깊은지 안다. 하지만 이 이치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내 묻겠다. 태어나고 죽는 생사 문제가 가장 근본적이다. 네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너는 어떠했는지 말해보라.
이 질문에 향엄은 오리무중의 안개가 밀려들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답변을 따져볼 방법조차 알지 못한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방에 들어와 답변으로 쓸만한 구절을 찾아 모든 책을 샅샅이 뒤졌지만 한 문장도 찾을 수 없었다. 향엄은 위산을 찾아 시도 때도 없이 비밀을 알려달라고 제발 분명히 말해 달라고 간청한다.
너에게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얼마가지 않아서 네가 나를 원망할 거다. 어쨌든 내가 하는 말은 다 나한테 해당하는 것들이니 너와는 아무 상관없다.
절망에 빠진 향엄은 책을 다 불태우고 이렇게 말한다. 이 생에서는 더 이상 부처의 진리를 공부하지 않겠다. 탁발승이 되어 여기저기 떠돌기만 할 테다. 그렇게 탄식하며 스승의 곁을 떠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절에 의탁한다. 마당을 청소하다 깨진 기왓장이 보이길래 무심결에 멀리 휙 하고 던졌는데 그 기왓장이 대나무에 딱! 하고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향엄은 문득 본래의 '나'는 태어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햐, 이거였어? 정말 이거구나. 향엄은 암자로 돌아와 몸을 깨끗이 씻고 초를 밝힌 뒤 멀리 있는 스승 위산을 향해 절을 한다.
스승님 존경합니다. 부모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푼 자비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때 제게 비밀을 알려주셨다면 어찌 오늘 이 놀라운 일을 겪을 수 있었겠습니까?
위대한 스승들의 위대한 가르침 중 더 위대한 가르침은 말하지 않고 전했으니, 말로 전해주고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중 선배 형은 하나하나 일일이 알려줘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건 목마른 갈증의 물 한잔일 수 있지만, 결국은 우물을 파야한다며, 자기 우물을 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