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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둔 성공

여획(女劃)에 갇혀

by 노월

그의 노력은 결과물을 남기지 못했을 것 같다. 오래 구상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부담이었을까? 아님 명작이 되지 못할 거란 불안을 감추기 위한 포장이었을까? 그에게는 뭐가 두려웠을까?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그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은 걸까?

몇 해 째 마무리를 못하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 작품은 앞으로 다시는 쓸 수 없는 역대급의 작품임을, 인생 최후의 완성작임을 스스로 의심하지 않기 위해 완벽을 위해 수정하고 고쳐도 마지막 퇴고를 미룬다.


그의 아이디어가 언뜻 한 번씩은 번쩍이는 순간으로 나타나긴 했어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쥐고 있다.

세상에 표현되지 않고 접혀있다.

자신의 밑바닥에 깔린 이 생각을 섣불리 불완전한 상태로 발표되어 끝내 스스로 미완이라며 고개를 흔들 것 같아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이 미완성이 타인을 자극하여 자기 아이디어를 뺏길까 두려운 것이다. 지금껏 행한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갈 뿐 아니라, 남 좋은 일만 한 꼴은 더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걸 미연에 막아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이쯤이면 됐다는 자기만족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그러나 때의 맞춤은 노력이나 의도로 되지 않는다.

그러한 때가 되어 그렇게 된다. 의지로 되는 건 아니다.

오비이락을 까마귀 탓하는 게 잘못이듯이 나의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어 정작 본인의 아이디어가 도난당했다고 느껴지는 건 편협되고 속 좁은 착각이다. 내게 떠오른 생각들도 이전의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의 인연이었을 텐데도.


불후의 작품을 향한 그의 열정은 아름답기도 하다. 내가 그를 만나기 전에 벌써 여러 스태프들의 교체가 있었던가 보다. 그의 초록방을 찾아갔을 때 그는 마당에서 쇠막대기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내게 흰 타이즈를 입어보라고 권한다. 등뒤의 자크를 머리끝까지 올린다. 온몸을 감싼 흰 옷은 코로 숨 쉬는 작은 구멍을 제외하고는 온몸을 감싸게 만들어져 있었다.


좋아, 60대 여인과 20대 젊은이도 찾았으니 이제 한 사람만 찾으면 되겠다며 그가 웃는다. 나이별 상징으로 나는 40대 남자 역할이다.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해 보면 그의 작품은 인생 전체를 한눈에 꿰어내려는 심산이다. 생生은 이름표를 부여받아 불리지만 익명이요, 젊음과 늙음은 나이가 아닌 인식의 모습이요, 개방과 폐쇄의 칸막이는 관점에 따른 감금과 안전이다. 같으면서 다른 혼돈 속 무질서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사색을 담기에 자칫 모호성에 휘둘릴 것 같다.


시간적 경제적 제한으로 작업의 한계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완성도와 범위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몇 달을 같이 지내도 나는 작품과 그를 이해 못 하고, 그도 나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작업은 그렇게 내가 있는 동안 끝나지 않고 나는 헤어진다. 결과는 모른다.


자기 범위를 스스로 정해 한계 규정에 벗어나지 못하는 여획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겸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과는 끝이 아니다. 어떤 결론도 완벽하지 않다. 다만 현시점의 충실한 반영일 뿐이지만 불완전한 결과물이라도 나름의 가치는 있다. 그 불완전의 연속이 완전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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