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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갇힌 산

구름이 걷힌 산

by 노월

산 중턱에서 갑자기 안개구름이 몰려든다. 일기예보상 맑은 날씨임을 확인했지만 산행 중 날씨는 늘 변화무상이다. 안개가 조금씩 산길을 막더니 이내 자욱해져 표지판 확인도 어렵다. 더듬듯 올라간다. 막바지 오르막 언덕에 올라 앞에 산정상을 남겨둔 듯하나 오리무중의 짐작이다. 짙은 물안개로 얼굴의 솜털까지 방울졌는지 간질거리는 뺨을 훑으니 손등으로 물이 주룩 흐른다.


안경도 닦을 겸 잠시 서서 물을 한 잔 마시며 쉰다. 산 정상이 얼마나 남았을까? 정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구름은 비바람으로 바뀌어 몸을 날리듯 떠밀고 산정상의 구름들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산의 윤곽이 서서히 나타난다. 구름에 갇혀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던 산 정상이 바로 코앞에 떡하니 서있다. 가려져 얼마나 올라왔는지 모르게 허겁지겁 오른 탓일까. 이렇게 정상이 가까이 다가온 줄 몰랐다. 산 전체가 깨끗하게 위용을 드러낸다. 멋지다.

산과 구름이 모두 하얗게 싸여 구분을 할 수 없더니 (山與雲俱白 雲山不辨容)

구름은 흘러가고 산이 홀로 섰다 일만이천봉 (雲歸山獨立 一萬二千峰)


이 시를 십여 년 간직하다 버렸다. 시를 쓴 이가 세도가라고 해서 불편했다. 그의 권력욕이 보이는 것 같다. 을 바르게 드러낸다는 명분으로 구름을 쳐내며 권력 정점을 유지하려는 핑계처럼.

택군(擇君)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세를 앞세운 그가 본 금강산이라면 그는 일만이천봉을 그의 발아래 두려 했을 의도가 충분히 의심스럽다.


산은 원래 그렇게 의연했거늘 굳이 구름을 걷어내야 드러날까? 산 정상 주변은 늘 바람이 많고 구름 안개가 잦다. 변화의 다양성을 당리당략의 편 가르기로 이익을 얻으려나. 비바람을 피바람으로 얼마나 상대 진영을 억압했을까?


산등성이를 타고 구름이 많아야 산신령의 신비로움도 더해진다. 이무기들이 피운 연기가 산을 가리고 멀리하게 해도 山은 스스로 山임을 누가 부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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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가면역계 질환이 있는 이를 상담했다. 그 병명이 무엇이든 본인이나 조력자는 마음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쉽지 않다. 방향을 잘 잡고 지치지 않는 일상을 오래 유지할 결심을 해야 한다. 그 어떤 병이든 본인이 주인임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찌 보면 누구나 살아내는 하루를 무난히 넘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라 쉬울 수도 있다. 애를 많이 쓰지 않는다면. 그러나 자가면역 질환은 내부의 적이다.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달래야 한다. 적군과 아군의 경계가 모호하고 피아의 구분이 쉽지 않다. 자칫 병을 치료한다고 강력한 방법으로 나와 나 아닌 나 모두를 공격하는 우를 범해서는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구분 없이 섞이고 혼돈된 상황이면 자꾸 손을 댈수록 혼란만 가중된다. 응급의 상황이나 위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틈을 두고 가만 놔두고 기다려보자.


물론 손 놓고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다. 서로 섞여 탁해진 몸을 치료랍시고 더 흔들거나 조급해하면 반응만 격해진다. 주인은 주인의 할 일인 일상을 할 수 있는 내에서 부지런히 이어가면서 찬찬히 바라봐야 한다. 시간이 드는 일이다.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이유는 뭘까를 고민해 본다. 자신이 만들었을 수도 있고, 주변의 기대치일 수도 있고, 타인의 시선이나 비교를 통한 불만일 수도 있다. 욕심이든 불만이든 그 모든 외적 내적 자극에 너무 민감한 과잉 반응이 면역계를 흔들고 신체 방어력을 교란시킨다.


산이 드러나지 못하게 구름이 가렸을까? 산 정상은 늘 바람이 많고 구름이 잦다.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구름은 알아서 언젠가는 걷힌다. 또 오고 또 올 구름이지만 지나간다. 그 과정에 구름은 구름의 역할을 했음이다.


자가면역의 질환이 자기부정에 기반한 오류여서 자기부정을 자기 긍정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자기를 무슨 수로 긍정 부정으로 나눌까? 염증이니 면역이니 국소 조직학적 검사는 검사대로 두고, 먼저 자기는 자기다. 긍부정이 아니라 자기를 자기로 인정하자. 그냥 자기가 자기 자신임은 스스로 저절로도 그러하다. 누가 규정하고 이름 짓고 분류하여 확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누구든.


나는 내가 나 아닌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니 내가 나 아닐 수가 없다. 내가 나 아니라고 한들 무슨 수로 내가 나 아닐 수가 있나? 찾을 수도, 찾을 필요도 없다. 너는 누구냐고 묻는 어떤 답도 다른 모든 답도 너를 바로 나타낼 수 없기에 너에겐 부족하다. 네가 누구냐가 아니다. 누가 너냐?


그가 다시 올진 모르겠다. 오든 아니든 스스로 산이요 살아있는 자생력을 믿어야 한다. 본질은 가린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 힘이 몸을 맑히고 그 순환이 몸을 회복시킨다. 드러난 일만이천봉, 참 좋은 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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