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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16. 2022

통속적 인간

들킨 계산서

그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뜨악했다. 나이 마흔까지 50억을 모으는 게 목표라고 한다. 무슨 수로 그 큰돈을 모을 지도 궁금했지만,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돈으로 뭘 하려는 것인지였다. 꼭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그게 뭐길래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할까 싶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런데 그의 답변이 좀 그랬다. 우선 돈을 모으는 게 목표라고 한다. 일단 돈을 모으고 나서 생각해보겠단다. 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것 외면하면서까지 인내하여 얻고 싶은 게 그냥 그 돈이라고? 그때가 되면 그 돈으 뭘 할지는 몰라도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니 많으면 좋지 않냐는 답변이다. 아무리 파이어족이 로망이라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도 않을 뿐 아니라, 혹여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아마 더 큰 액수를 목표로 하지 않을까 싶었다.


왕이 되고 싶은가? 정권의 최고 정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적을 물리치고 피를 흘리며 권모술수를 부려야 하는지는 역사상 숱한 사례들이 보여준다. 그렇게 이룬 성공과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할 뿐이다. 힘란 평가를 받으려고 그렇게 험하게 살아야 하나 싶다. 물욕의 정점이 권력욕이요 명예욕이라면 그 달콤함은 일단 맛을 보면 점점 더 탐닉하게 되는가 보다. 한마디의 말에 세상 사람들이 줄을 서고,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으로 좌로 우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라면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그 재미에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장이 되고 싶고, 의원이 되고 싶어 하고, 위원장이 되려고 하는가 보다. 외제 스포츠카를 타고서 느끼는 속도감이나 승차감보다 하차감을 위해 구입한다는 것처럼 부의 진정한 목적은 과시라는 말에 놀란다.


역시 똑같이 묻는다. 그렇게 왕이 되어 뭘 하고 싶은데? 국가를 위한다느니 인권이니 정의를 말한다면 그저 왕 노릇 하고 싶은 거다. 구체적으로 꿈꾸고 이루려는 세상이 있고, 왜 그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한 권력의 필요성이 아닌, 두루뭉술한 언급은 당위성 결여 무슨 말을 하든 미사여구일 뿐이다. 오직 왕이 되기 위한. 총론만 거듭 언급할 뿐 각론에 대한 질문들은 뭉개고 있으니.


그런 그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단다. 축하할 일이었다. 드디어 돈 쓸 곳이 생기게 됐을 테니. 그것도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땀 흘려 모은 돈의 일부나마 쓰임을 찾았으니. 30대 중반에 그런 만남이니 진도를 은근 기대해본다. 같이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시간이 흘러 천일을 넘겨 사귀는데, 그다음 말이 없다. 잠잠하더니 소식이 들렸다. 성격상의 이유?로 헤어졌단다. 여자 친구가 힘들거나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너무 징징댄단다. 답변이 살짝 궁색하다는 느낌이지만, 남녀 간의 일이다.


어느 나라에 국지전이 일어나고, 코로나 이후 긴축재정이라며 금리 올돈줄을 죄고, 물가 상승에 주가 폭락이다. 세상이 어지러울 땐 조용히 내실을 다지며 힘을 키워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며 심적 안정을 도모하여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을 지켜야 한다.


갑자기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며 수수료는 얼마 안 받겠단다. 어디서 약을 팔려고 참 나. 너 그렇게 파이어족 되려다 파이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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