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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기

집안, 쌓인 감정 노출

by 노월

감정은 이해의 폭에 조절되고, 시비는 권위에 달라진다.


사이가 친할수록, 가까울수록, 가족일수록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살피지 않고 툭 던진 말이 상처가 된다. 평소 지닌 생각이 걸러지지 않은 표현에 틈새가 생기고 아프게 깊이 패일 수도 있다.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음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묵은 시간들의 반복이 넌 이런 인간이야로 인격을 규정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 의견 불일치나 감정 격동에 세워진 칼날은 날카롭게 상대를 겨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쯤에 서로를 무마시키고 화합할 힘이 필요하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어. 어느 집안에나 있을 법한 고부갈등이 그날도 있었던 거지. '어디 감히'라는 시어머니와 '지금이 어느 땐데'라는 며느리의 기싸움이 다시 재기될 참이었어. 무슨 말이든 누가 먼저든 하나 걸리기만 해 보라는 식의 눈치와 꼬투리를 잡으려 드는 때였어. 멀리 번개가 번쩍이고 곧 천둥소리가 우르쾅 한 판 벌어질 참이었지.


아들 입장에서도 양 쪽 여자들 틈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쪽을 말리면 저쪽에서 여기 편드냐 흘기고, 저쪽을 달래면 이쪽에서 끼리끼리 아주 잘한다는 식으로 구박이니, 분위기 안 좋아지겠다 싶으면 그냥 나가버리는 게 오히려 상수가 되었겠지. 그날도 팩 하는 기분에 밖을 나가버렸어.


집에 오면 뭔가 떨떠름한 분위기였음을 어른이 모르진 않았지만, 딴에는 뭔 일인지 알아보기도 하고, 서로 이해 좀 해주라는 식으로 달래도 봤지만, 여자들끼리의 냉랭함에 좀처럼 온기가 돌지가 않았던가 봐. 이렇게 가다가는 영 남남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란 생각이 들었나 봐.


식구가 느는 건 좋은 일이지. 자식이 태어나는 것도,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도, 사위가 생기는 것도 다 좋은 일이야. 근데 이 집안은 어찌 된 일인지 고부가 만나면 어찌나 상극처럼 서로 밀치고 외면하는지 어른 입장에서도 답답했던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 못한 본인이 못난이처럼 여겨졌나 봐. 서로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맡겨뒀는데, 가끔은 결정권자가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게 가장 잘못된 결정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


어른은 마당에 서서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숙이며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를 읊조려. 밖에 비는 오는데 주인양반이 뜰에 서서 뭐라 중얼거리니 부인이 문을 열어본 거야. 시어머니의 행동에 며느리도 고개를 돌려보니 어른이 서서 꼼짝도 않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고부가 같이 마당에 가서 뭐 하시나 보니, 내가 잘못했다며, 다 내 잘못이라며, 나를 용서해 다오라며 어른이 되뇌고 있어. 아이고 당신 여기서 뭐하요? 아버님 비 오는데 어찌 그러요? 어른의 팔을 한쪽씩 붙들고 어서 방으로 들자고 해도 어른은 꼼작도 않아. 다 내 잘못이니 나를 용서하오라는 말만 반복해.


세 사람이 다 비 맞고 있자니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려. 울분을 식히려 밖을 나갔던 아들이 돌아와 이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이러다 모두 앓겠다 싶어 세 사람 등을 모두 떠밀고 방으로 들어왔지. 아들은 수건을 가져와 여기저기 혼자 분주하고, 어른은 젖은 몸에 덜덜 떨면서 그 말을 입에서 놓질 않아.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도.


혼절할 것 같은 모습에 부인은 남편 몸을 닦고 말리며 매달리듯 이제 그만 하소. 내 잘못이니 다시는 며느리 구박 않겠다고, 덩달아 며느리도 옆에서 울면서 어린 제가 잘못했노라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서로 옷을 말리고 등을 두드리면서 손을 잡으니 그만 모든 게 풀어져버렸지. 그 후로 집안이 화목해졌거든.


참 그 어른 대단하지? 그것이 그저 지켜보기만 해서는 부족하거든. 진정 그러함을 보여주고 또 그 마음이 전해져야 가능한 일이라. 서로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바라는 마음에 맡겨뒀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좋은 선례가 아닐까.


자식과의 문제라든지, 부부간의 문제에서 상대를 탓하는 이에게 늘 이 얘기를 해주곤 하지. 그런데 이런 얘길 해줘도 본인과는 무관하다고 느끼나 봐.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그랬어.

정말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거냐고.

그 문제를 외면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날도 머리 희끗한 중노인 몇이 찾아왔어. 그 나이 들면 대부분 고만고만한 고민과, 미해결의 문제들로 인한 질병들이 경중의 정도가 있긴 하지만 몸 여러 곳에 나타나기 마련이지. 만약 그게 그렇게 답답한 일이라면 내 일러줄 테니 그렇게 해볼 사람은 가까이 오라고 했어. 반 이상은 멀뚱이 엉덩이를 빼고 앉아만 있고, 그중 세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귀를 내밀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집에 가거든 무조건 부인 앞에서 무릎 꿇으라고. 그걸 할 수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한 명만 남고 둘은 에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라고 하느냐며 뒤로 빠져.


한 달 후. 그 한 명의 중노인이 다시 왔더니만. 음료수 들고 와선 씩 웃어. 그리곤 다른 일을 말해.

집에 며느리 둘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고. 큰 애는 수더분한데 작은 애가 욕심이 많고 시샘이 심한데, 동서끼리 잘 지냈으면 좋으련만. 최근 또다시 둘이 쌍소리가 나서 소란이라고.


집안의 일은 어찌 됐든 어른의 일이라고 했어. 잘 살피지 못한 책임이 어른한테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지. 피차 급이 같은 위치에서는 우위의 다툼이 생기기 쉽다고. 그래서 어른에게 그 잘못이 있다고. 일일이 요모조모 따지고 들면 해결될 것 같지만 끝이 없어. 그럴 필요도 없이 이런 모든 일은 어른의 굽힘으로 일시에 별 일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그게 어른의 역할이지요.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지. 집안의 화합을 위해.


가장 치열하고 치졸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집안싸움이다. 오랜 시간을 속속들이 아는 사이라 한없이 보듬을 수도 있지만, 갈라서면 그만큼 세세하게 따지고 들고 약점을 후벼 팔 수 있는 관계다. 약간의 명분만 만들어지면 달려들어 목줄을 세운다.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싸움을 멈추고 문제를 풀기 위한 속죄양으로 어른의 역할이 절실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장 빠른 손쉬운 해결책으로.


그 앞에 무릎 꿇기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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