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진 회복력
원래 그러했는지 서서히 변화됐는지는 모르겠다. 몇 가지 특이한 점에 있어 주변의 지인들로서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그녀에겐 그럴듯한 이유를 가진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다. 친화력 있어 보이지만 곤란한 질문엔 소심한 웃음으로 감추고 급한 일에서 남에게 부탁하기 어려워한다. 의견을 드러내기보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하고 넘어간다. 그런 그녀가 발목을 삔 이후 이곳저곳 온몸에 통처가 발생하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한여름의 쨍쨍한 낮에 긴팔의 운동복을 입고 다닌다. 거리에 마스크나 안면보호대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만, 모자에 긴팔의 후드티는 좀 아닐 것 같은데 그녀의 옷차림은 그렇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입고 다닐 옷으로는 많이 무거워 보인다. 안 더우세요? 참을만해요. 원래 추위를 많이 타고 더위는 덜 타요. 말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회색 후드티는 너무 두꺼워 보인다. 긴팔운동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여러 날이다. 같은 옷이 여러 벌일지도 모르겠다.
햇볕 알레르기 때문에 긴팔의 옷을 입는다고 말하지만, 특히나 더웠던 올여름에도 운동복의 자크를 목까지 채워 입고 걷는다. 이게 편해요라고. 본인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주변의 관심과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웃음끼 띤 목소리다. 그녀가 색깔별로 옷을 골라 사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른 옷들을 입은 모습은 보게 될까, 매번 같은 옷만 입을 거면 저 옷을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요가 강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몸의 유연성이 뛰어나고, 그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십여 년 넘게 해 온 운동으로 몸을 관리한 사람 치고는 살집이 있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복부는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탄력성 근육으로 인정하기가 힘들다. 다만 시범을 보일 때의 모습엔 자못 그 부드러움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동작이 굼뜨고 자세가 굳은 회원들의 동작을 잡아주다 오히려 본인이 쉽게 삐거나 다치는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예전의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관절에 무리가 된 어깨나 무릎의 후유증이 무관하진 않겠지만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그보다 유연성으로 염좌가 발생해도 불편하지 않아서 넘어갔거나 삐어도 웬만하면 삔 줄 모르고 지나가서 누적된 근피로도가 발현된 건 아닐까. 몸이 뻣뻣하면 크게 삐고, 유연하면 잘 삐지 않는다. 다만, 유연한 사람이 한 번 삐면 잘 낫질 않는다.
평소의 걸음수도 적지 않다. 집에서 요가원까지 출퇴근길은 물론이고 장을 볼 때도 누굴 만날 때도 걸어서 목적지에 간다.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걷는다. 택시는 물론 버스도 잘 타지 않는다. 그러니 운동과 걷기로 몸이 건강할 것 같은데 아닌가 보다.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과식은커녕 하루 한 끼의 식사만 하는데도 체중은 과해 보인다. 아침엔 바빠서 건너뛰고, 저녁을 먹으면 운동에 부대끼고 속이 불편해서, 점심만 먹는다는 대도 그렇다. 운동량에 비해 식사량이 부족해 보인다. 10년 넘게 하루 한 끼로 점심만 먹어온 터라 몸이 적응됐을 거라 말하지만 맥을 보면 저 깊은 곳에서 맥박이 겨우 미약하게 꼼지락거릴 정도다.
속이 차가운 건 또 어떤가. 소화력이 약해 잘 체滯하기도 하지만 설사도 잦다. 이건 단순히 위와 장의 활동력이 약하다고 하기에 부족하다. 타고난 예민함에 생각이 많고 긴장을 많이 한다는 의미다. 사회생활에서 그녀는 적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편의 무리한 부탁도 분란이 싫어 희미한 미소로 알았다고 들어준다. 그리고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가 오래 아물지 않고 깊이 남는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니 그런 사람인 줄 아는지, 자존심도 없는 줄 아는지 그녀 속으로 분개해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그러면서 웃는다.
계단에 넘어지면서 다친 발목의 통증을 얘기하다, 넘어지지 않으려 팔을 뻗으면서 손을 짚어 어깨가 아프고, 현재는 쇄골부위의 통증으로 고개 숙일 때 불편하다는 말로 그 불편한 부분에 대한 장황설과 다양한 통처를 듣고 있으면 도대체 어디가 불편한지 핵심을 짚기 힘들다. 다 아프다고. 보통 며칠 지나면 나을 만한 시간인데도 이 염좌로 그녀는 온갖 관절들에 통증을 호소한다. 좀 더 얘기하다 보면 예전의 다친 곳이 이번의 일로 드러났는지 다시 아프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나하나 나누기도 곤란하고, 선후를 정하기 힘들다. 쌓이고 묵은 게 어떤 계기로 한꺼번에 쏟아진다. 건강검진상 딱히 이상 있는 곳은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녀는 또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네요 라는 말을 전하면서. 뭔가 꾹꾹 눌러놓은 느낌이다. 참고 견디고 버티고 덮어 감춘다. 이럴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니냐며.
마주 앉은 그녀에게 내가 전한 말은 이렇다. 몸은 정직하다. 그리고 기억력이 아주 좋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