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잘 지내는지 가끔은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거리도 멀고, 서로의 바쁜 생활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시간을 잡고 만난다. 문제는 그 친구를 보고 싶어 기쁜 마음으로 만나 얘기하다 보면 1시간도 안되어 이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이 고갈되고 자기 푸념이나 별 것 아닌 자랑을 길게 늘어놓는다. 딴 얘기를 하다가도 이미 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다시 들어야 하는 상황에 의미 없는 말이 늘어난다. 그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헤어질 때까지 엉덩이를 들썩여도 오랜만의 만남이라 툭 자르질 못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헤어진다. 반가웠고 다음에 또 보자는 속없는 헛웃음의 목소리로 악수한다.
작년에 형이 왔을 때, 엄마는 큰 수술을 마친 큰아들의 건강에 많은 걱정을 했다. 이미 수술을 한 때는 십 년이 넘었지만, 증량된 약물 부작용의 문제가 불거졌다. 외국에 사는 형의 입장에서 그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본인과 맞지 않아 우리나라로 와서 의료 진료를 받고 싶은 것이야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한 달여 기간을 엄마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걸림이었겠지만, 형은 엄마도 볼 겸 치료도 할 겸 이참에 얼굴 한 번 더 보자는 가벼운 마음일지 모르지만, 엄마만의 생활이 있음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모양이다. 아들인 내가 엄마집에 와서 며칠 지낸들 무슨 문제일까, 오히려 효도도 할 수 있어 다행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형은 올해도 왔다.
작은 아파트에 엄마 혼자 외롭고 적적할 거란 형의 생각은 오해다. 콩 삶아 메주 띄워 장을 담그고, 틈틈이 김치 담고, 엄마가 좋아하는 깻잎이나 콩잎 장아찌도 담고, 밭일도 가야 하고, 동네 커피숍의 커피 찌꺼기도 모으고,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혼자 뜸뜨기도 하고 침 맞으러 다녀야 하는 등등 하루가 바쁘다. 잠버릇도 있어 누군가 옆에 있으면 더 신경 쓰여 뒤척인다. 빈뇨로 화장실도 들락날락.
멀리 사는 아픈 아들이 왔으니 내심 엄마는 맛있는 것도 해주고 싶고 잠자리도 봐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겠지만 한 달의 기간은 쉽지 않다. 화장실에 가서 한 시간 넘게 들어가서 나오지 않기도 하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야 병에 좋다는 말로 기껏 차려놓은 밥상에 고기 몇 점과 나물만 먹는다. 아들이 온다고 미리 햅쌀을 준비한 엄마 주방엔 식은 밥이 넘친다. 외출이 없는 날이나 저녁 시간에 아들은 티브이 리모컨을 들고 종일이다. 엄마 보고 싶은 채널 있냐고 물어본다고 엄마가 그래하면서 리모컨을 들고 티브이에 앉을까?
병원 검사 결과를 물어볼 수도 없다. 인상이 안 좋은 때에 엄마는 언제 말을 꺼낼까 눈치를 보며 병원에서 뭐라고 하더냐고 물으면, 아들 된 입장에서 수치를 나열한 들 엄마가 알아들을 수도 없지만, 걱정만 더 얹는다는 생각이었는지, 별 이상 없다더라라고 말을 짧다.
곗날이 되어 친구들이 엄마 집으로 오기로 한 날이 있었다. 오랜 친구들이지만 아픈 아들이 집에 와있어 안된다고 장소를 옮기기 뭣했다. 혹시 너 그날 무슨 일없냐는 말에 형은 별 일은 없고, 건넌방에 있을 테니 그냥 계모임 해도 된다고 허락한다. 다행히 병원 검진 날짜가 마침 곗날과 겹쳐 형은 일 보러 갔다.
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보다. 어려서 집에 오듯이 엄마 집에 아들인 내가 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오랜만에 만나서 더 반가운 거 아니냐고. 화장실에 앉았을 때가 제일 조용하고 마음이 쉬어지고 여러 가지 검색과 메일 답장을 쓰기도 하느라 좀 길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고. 밥이나 빵, 면 등의 탄수화물은 가급적 피하라는 의사의 조언이 있어 그랬던 거고. 티브이는 저녁에 심심해서 엄마랑 같이 보는 거고. 뭐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형을 만나러 엄마 집으로 가면 두 사람은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다. 왔냐는 말 한마디 던지고 시선은 다시 티브이다. 닭요리 사 왔으니 같이 먹자고 판을 벌려도 형은 그래 좋지 하고 눈은 티브이다. 대화하기 좀 그렇네 하며 내가 티브이를 끄고서야 형은 냄새 좋다는 말로 식탁에 가까이 앉는다. 아무 말없는 엄마는 굽은 허리를 끌고 젓가락을 놓는다.
형은 가고 엄마는 형이 덮은 이불의 호충을 벗겨 세탁기를 돌린다. 신발장을 정리하고 그릇을 다시 찬장 깊은 곳에 넣는다. 형이 가면서 뭐라고 하던? 한숨이 몇 차례 왔다 간다. 몸은 좀 나아졌으려나? 내 몸도 아픈데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런저런 물음에 아무 말 없던 엄마가 한 마디 한다. 내년에 또 온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