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벽

표현이 차단된

by 노월

수동적 감각만 남았다. 어떤 표현도 구현할 수 없다. 글쓰기는 물론이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눈을 깜박일 수도 없다. 오직 수용만 가능하다. 머릿속 숱한 생각이 떠오르고 많은 감정들이 지나가고 느낌들이 오가지만 전달할 방법이 도저히 없음이다.


세상을 보고 듣고 느껴지고 만져지지만, 내 목소리는 내 몸짓은 갇힌 유리벽 안에서의 표현일 뿐, 저 너머의 상대에게 전달하고 전해줄 방법이 없다. '나 여기 있다'라고 소리쳐도 입과 혀의 움직임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말들은 내 귀에만 들리는 고함 소리요, 온몸으로 뛰고 팔을 뻗고 손뼉 치고 벽을 두드려도 의지의 몸짓은 아무런 움직임 없는 동작이다. 속에서만 요동치고 있을 뿐 실제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고요하다. 조용히 누워있는 모양 그대로 가만있어 차분할 정도이다.


반가운 이들이 찾아와도 가족들이 한 번씩 들러도 '너무 보고 싶었고 만나서 반갑다'는 뜻을 전할 방법이 없다. 다만 그들의 말소리를 알아듣고, 그들이 잡아준 손으로 손등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결을 느낄 뿐이다. 처음엔 답답하여 웅웅 같은 소리를 낼 줄 알았고, 심한 자극에 온몸이 들썩거리기도 했지만, 그건 하고서 싶어 하는 표현이 아니라 반응이다. 자극에 대한 무조건적 반사 반응. 정작 원하는 동작들은 전혀 할 수가 없는데 보는 이들에겐 그렇게 보인다.


너무 답답해 눈물이 흐르기도 했지만, 시간은 모든 걸 지우고 삼키고 마모시킨다.


찾아오던 이들도 빈도가 줄고, 가족들도 치료여부나 안부 아닌 생사의 유무 확인으로 얼굴만 확인하고 왔다가 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살아 있지만 죽지도 않은 중간. 생체 징후만이 수치로 나타나고 체온이 한 번씩 요동을 치며 발열반응을 일으키고 산소포화도의 변화가 가끔 나타날 뿐이다. 치료도 아니고 관리도 아니다. 링거의 주삿바늘이 혈관을 뚫고 연결되어 항생제와 해열제가 흘러가고 있음을 지켜보기가 전부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렇게 유지된다.


표현할 수 없음의 답답함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몸부림이, 거부도 수용도 안 되는 상황들이 처음엔 괴물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뛰어넘어 하얀 공간을 뒤흔들던 야만의 시간이 지나면서 지치고 늘어지다 힘을 잃고 벌떡거리다 멈춘다. 포기가 반복되면서 수동적 수용을 받아들인다. 체념이 익숙해진다. 어쩔 수 없음은 어찌할 수 없다. 욕망도 의욕도 용해되어 흩어지고, 나중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듯하다.


움직임이 없으니 촉각도 무뎌진다. 의식의 몽롱함은 눈꺼풀을 닫게 하고, 눈물마저 말린다. 음식을 삼킨 지 오래되어 혀와 입술의 움직임을 잊은 지 오래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외부와의 접촉으로 심폐 호흡은 무동력 반응으로 작동한다. 복부로 투여되는 영양물질은 음식을 소화할 노고를 만들지 않아 장腸의 움직임마저 더뎌진다.


한겨울 호수의 얼음판 밑으로 얼지 않은 물이 흐르면 어른어른 떠돌던 물고기의 유영은 더 깊은 추위에 호수 전체가 통얼음이 되어 덩어리로 응결되면 물고기는 바닥의 진흙 속으로 파고들어 가 움직임을 멈춘다. 빙하기에 얼음 속에 갇혀 얼음 덩어리와 같이 얼어붙어 꼼짝을 할 수 없는 물고기처럼.


보고 듣고 느끼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다. 곁의 얘기하는 사람도 상대가 듣고 있으리란 추측으로 말을 하고, 혹 어디가 불편하리라 짐작으로 살필 뿐이다. 가족이 와도 친구가 들러도 그들이 내미는 손의 온기를 느끼고, 말을 걸어 대화를 시도해도 질문하는 그들은 스스로 답을 하면서 그럴 거야 그랬었잖아 하며 귀에 가까이 입술을 붙여 말해도 꼼짝 할 수 없는 이의 속마음은.


오감의 감각이 떨어지면서 생각과 감정도 둔해진다. 바늘로 찔러도 움찔하던 반응조차 미미하다. 불러도 만져도 주물러도 아무 반응이 없이 미적지근한 체온과 희미한 맥박만이 아직 여기 있음을 알린다. 그러다 점점 체온과 맥박마저 사라진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장례지도사는 말한다. 마지막 인사말은 들으실 거라고. 가장 수동적인 감각인 청각이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으니.


예상은 늘상이었으나 예정은 몰랐다. 이제 더 이상은 그만이길 그만 떠나길 바라는 마음도 없진 않았으리. 그러나 누가 결정을 한단 말인가. 생명 연장, 장수長壽가 꿈인 시대는 지났을까. 스스로 정리하거나 맺음을 할 수 없는 연명치료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감각과 지각, 인식만 있고 표현할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떨까. 굳이 물음이 아닌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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