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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26. 2022

눈 감은 태양은 붉고

눈뜬 공간은 푸르다

태양을 향해 눈을 감고 서있다. 얼굴 가득 햇볕을 받고 있으면, 눈꺼풀을 통과한 빛깔이 온통 붉다. 눈을 감았는데도 색깔을 볼 수 있다. 눈에서 이보다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가까이에 닿은 물체. 눈꺼풀은 그토록 선홍색이다. 그렇게 눈꺼풀을 통해 들어온 빛에 잠시 노출되었다가 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면, 이상하게 공기가 파랗게 보인다. 피사체가 초록의 공간을 통과한 듯이 뭔가 아주 산뜻하게 보인다.

  

형제들에게 어느 순간 나는 아주 추한 놈이 되어 있었다. 가까이 있는 노모와 누이를 돌보기는커녕 그들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박대하고 있다는 인식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답답한 것은 그러한 자신들의 느낌을 내게 직접 거론하거나 확인을 하거나 따지지도 않으면서, 괜히 내게 어깃장을 놓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쪼잔한 사람인 것 같아 말하긴 뭣하지만 사실은'이라고 시작하는 말들은 본인을 이미 쪼잔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하는 말들이라 듣는 이는 뭐 그렇게 자기 비하까지 하냐고 너그럽게 듣는다. 또는 어떤 뉘앙스로 얘기를 하던 중에 '뜻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뭐 대충 그렇다는 거지'라고 분위기만 띄우고 말을 중단하면, 듣는 이는 더 깊숙이 그다음까지 추측하여 넘겨짚고는 스스로 도달한 결론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한 결정에 대한 믿음을 지키려 하기에 다른 가능성의 변수를 고려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선입관들이 쌓인다.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하고 운을 띄운 얘기들은 '그렇게 알아들어'라고 하는 의도적인 편견 유도의 발어사들이다.


물론 그들은 외국에 거주하기에 상황 파악이나 정보를 얻는데 한계가 있긴 했지만, 한쪽의 일방에만 의지한 왜곡된 인식의 색안경은 처음의 누군가의 시도를 통한 각인 만으로도 쉽게 선입관이 생겨버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농도를 짙게 했다. 자신들의 짐스러운 마음에 이곳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관심이겠지만, 문제는 의사 전달자를 전폭적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그 인식 바꾸기가 힘들고, 서로 대화할 시간도 잘 나지 않는다.


나중엔 나와는 무관하게 쌓인 감정들에 도대체 내게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걸 몰라서 그러냐'는 투로 말할 뿐이다. 구체적 사항을 말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네 놈이 그렇지 뭘 그래' 하는 식이었다. 그들의 막연한 의심을 내가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은 본인들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답답했다. 뭔지도 모르고, 내게 왜 그렇게 하는지도 몰라 묻거나, 내가 그렇지 않음을 부정할수록 강해지는 편견에 더 이상은 입을 닫게 됐다. 내가 입을 닫으면 그들은 '이젠 할 말도 없냐'며 따진다. 그렇게 내 말수가 적을수록 그들은 침묵이 곧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더 장벽을 높였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이젠 외면 아닌 도외시에서 차단으로 나아가 상종 못할 마녀가 되어갔다. 나는 떳떳하지 않을 게 없는데도 씌워진 프레임 속에서 그들의 인식은 공고해지고 나는 외로웠다. 


외면이나 누명. 생각보다 힘들다. 언젠가는 알게 되리란 막연한 기대에서 기대어 버틸 것은 시간외엔 없다는 게 더 허탈했다. 나중엔 내가 그들의 인식과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고, 왜 내가 굳이 그리해야 하나 싶었다. 나의 어떠한 말이나 행동이든지 그런 것들은 오히려 그들이 가진 인식 재확인의 반복이 되어버리니.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났다. 단체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나는 외국에서도 카카오톡이 되는 줄 몰랐다. 여하튼 형제들 이름으로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대충 뽑아먹을 것 다 뽑고 취할 것을 거머쥔 누이가 우리 형제들도 이제 모두 나이도 들고, 엄마도 늙어가니 서로 소통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단톡방을 만든 것이다.  


정말 싫었지만, 나도 초대되었다. 정작 필요하거나 민감한 얘기들은 살짝살짝 비껴 나면서 흔하디 흔한 날씨나 운동, 건강, 주변 환경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그런 류의 소통이라도 필요하겠거니 했다. 그런 의도의 단톡방이라면 누이는 초점을 정말 잘 맞춘 카톡방이었다.  


그러나 그런 얘기들로만 채워질 순 없었다. 어쩌다 구체적인 사항들이 언급되기도 하고, 돈 얘기들이 나오면서 드러나는 실체적 상황들. 그런 거였어? 그렇게까지 했다고? 설마? 내가 알기로는 아니던데. 등등의 언급들이 쏟아지고 누군가는 설명이 필요했다.


피해의식이 무서운 것은 본인의 피해에 대한 감정만 집중되어 있고, 그 피해에 대한 보상심리로 타인에게 자신이 가하는 피해는 피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혹여 피해를 끼쳤다고 생각해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고 폄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당한 피해는 끊임없이 합리화시키며, 공감을 일으키고, 보상을 은근히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억울한다는 감정이 다 채워지기는 할까마는.


그런데 그런 본인의 피해의식도 살펴보면 다분히 자의적 해석에 기인한 과잉 의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당하고 살아왔는지 너희들은 모른다는 식으로, 너희들도 그렇게 당해 보라는, 그리곤 겨우 그 정도의 피해는 본인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며 더 가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그들로부터 알아서 내놓는 미안한 보상과 도움들을 아주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만만한 놈을 골라서. 흔히들 말하는 가스 라이팅이나 소시오패스적인 속성을 보이지 않게 적용하면서.


결국 그 단톡방은 개설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누이의 일방적 탈퇴로 끝나버렸다. 그녀의 야심차고 대범한 상황극은 그렇게 종료되고, 스스로 다른 형제들과의 연락을 차단하였다. 해외 거주하는 다른 형제들도 시간이 필요했다. 숱한 나에 대한 오해들은 제대로된 해소 아닌 해소가 이뤄졌다. 남겨진 앙꼬 없는 단톡방에서 우리는 남은 앙금들을 털어내려 했지만, 다 해소한 듯한 찌꺼기들은 한 번씩 감정을 타고 탁류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이 한국에 온다. 다른 일 때문에 오긴 하지만, 나를 만나려 한다. 이젠 내가 진이 빠져있다.  


형제라면 참 가깝다. 같은 부모를 인연으로 하고 있고, 어려서의 추억들을 공유한 사이다. 성인이 되기까지 같이 한솥밥을 먹었던. 그런 형제들을 오래간만에 만난다. 직접 보고, 직접 들은 것이야 겨우 신뢰할 만하다. 눈에 바짝 붙이고 봐야 한다. 그래야 눈에서 뗐을 때 시원해질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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