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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24. 2022

아주(鵝珠), 아주 난감한

거위가 삼킨 구슬을 본

아무리 구도승이라고 해도 인간인지라 탁발은 필수요, 먹고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싫든 좋든 생존의 과정이다. 탁발하러 간 집엔 옥구슬 장인이 한창 진상품을 만들고 있었다. 거의 완성된 구슬을 보며 더 손볼 곳을 찾으려 이리저리 옥구슬을 점검하는 중에 마침 지나던 탁발승이 바리를 내민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가 시주물을 가지러 간 사이 마침 먹이를 찾아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거위가 깎아놓은 구슬을 그만 삼켜버렸다. 그 공간에 그 장면을 고스란히 홀로 목격한 탁발승은 그게 무슨 일인지 몰랐을 터. 알아도 이미 일어난 일이다. 시주물을 건네려던 주인은 문득 조금 전 깎아놓은 구슬에 눈길이 갔고, 그곳에 있어야 할 구슬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여전히 탁발승은 문 앞에 바리를 들고 혼자 서있고 주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라진 구슬의 범인으로 그는 지목당했을 테다. 호의를 가지고 보시를 하려던 주인장은 오히려 도둑놈에게 당한 꼴이라 화가 났겠다. 탁발승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실적 증명은 다른 것 없이 원래의 구슬을 내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본인이 아니라고 항변을 한들.


거위를 지목하면, 당장 거위배가 갈라질 것이고, 아니면 도둑으로 몰려 밤새 흠신 두들겨 맞고 구슬을 찾을 때까지 갇힐 것이다. 물론 다음날 거위의 배설물에서 구슬을 찾기만 하면 끝날 일이지만 당장 그걸 밝힐 방법이 없다. 거위가 구슬을 삼키는 것을 봤으니 하루만 참아보자고 말한들 주인장이 그만큼 여유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혹 그런 언급이 탁발승의 달아나기 위한 궁리라고 여길 수도 있어 어떤 답을 하든 난감하다. 그나마 하루를 참으면 거위도 살고, 본인도 누명을 벗을 수 있다. 하나의 생명체를 구할 수 있으니 본인에 가해질 매질과 포박이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믿었으려나?


주인장의 요청으로 몽둥이를 든 이들도 예의 일들을 듣고 그 탁발승을 도둑으로 인식할 테니 그 구타가 더욱 거세었을 것이다. 과연 이들에게 탁발승이 아무리 본인은 도둑이 아니라고 한들 그건 도저히 납득이 될 리가 없다. 변명만 늘어놓는다며 매를 더 벌뿐이다.  


여기서 만약 주인장이 범인이라면? 그는 주변의 하인들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싶은 거고, 막상 탁발승이 범인이든 아니든, 거위가 구슬을 삼켰든 아니든 그는 하등 중요치 않게 된다. 그건 하인들 입장에서도 면죄부가 된다. 몽둥이질로 충성을 증명할 수 있고, 혹여 그 탁발승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주인장의 요청에 대한 복종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노라고 하면 뭐라고 할 것인가?


이쯤 되면 이제 구슬은 의미 없다.  

진실게임이 된 것이다.  

분위기를 전환할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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