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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05. 2022

어느 마침표

유한성의 소중함

갑자기 뜬 문자. 부고의 알림. 잘 아는 후배의 모친상이다. 퇴근 후 문상을 갔다.

" 어찌 예고도 없이 그런 일이?"

" 1년 반 정도 됐어요. 소화불량과 복통으로 병원 갔더니, 혈액검사상 염증 수치가 너무 높다고, 큰 병원으로 정밀검사받으라고 "

말하는 투가 남 얘기하듯 했다. 그렇다고 심드렁한 표정이라기보단 담담했다.


" 의사가 개복을 했을 땐 이미 췌장암 말기라서 수술을 하기 늦었지만, 종양이 너무 커서 복부 압박을 줄일 요량으로 일부를 절제했고, 항암치료를 받으면 6개월, 치료 안 하면 3개월의 시한부를 설명하데요 "


가족회의를 했단다. 부친은 평생의 동반자였으니 생명 연장을 위한 항암제 치료를 받자고 하고, 두 아들은 삶의 질을 위해서는 집에서 마지막을 간호하자며 의견이 갈렸다. 70대 중반의 모친에 이제 남은 날이 많지는 않았다.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며칠 동안 결론을 못 내리다 집에서 한약을 쓰면서 치료하는 후배의 말에 부친도 겨우 동의를 했다. 남편 된 마음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주변에서의 권유도 많았겠지만, 부친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두 아들은 번갈아가며 퇴근 후 모친과 시간을 보냈고, 그 사이 부친은 하루 종일 간병 아닌 간병 동안의 휴식 겸 운동삼아 그 시간 동안 밖을 나갔다. 후배는 모친의 상황에 맞춰 2-3일 간격으로 한약을 처방하며 혹 증상이 호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 다른 증상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항암제에 의지하지 않고, 가족이 아니라면 참 하기 어려운 처치들이다.


그렇게 3개월을 넘겨 6개월의 정해진 시간이 지났다. 그 후로도 모친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가벼운 산책도 하고, 어떤 날엔 뭘 먹고 싶어 하면 같이 먹기도 하면서.  매일 만나는 아들들이라 별 특별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같이 온 손주들 커가는 모습도 항상이었다. 1년 반이 지났다. 모두들 알고 있었다. 낫는 건 아니라는 걸.


돌아가시기 3일 전. 이젠 마약성 진통제에도 통증이 경감되지 않고, 모친 스스로도 더 이상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두 모이게 했다. " 형제끼리 잘 지내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복수가 차서 호흡을 힘들어하고, 혼수상태에서 잠자듯 3일 정도 계시다 가셨다고.


어찌 보면 다른 많은 부음에 비하면 부러울 수도 있겠다. 마음고생이 많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후배는 다행히 그런 시간이 주어졌고, 처음의 당황을 넘어 나중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덕분에 엄마는 제게 한약 처방을 많이 가르쳐주셨네요. 당신 몸으로 직접.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의 시간들. 영원불멸이라면 이렇게 소중한 가치를 지닐까? 주변과 내 손안에 있는 것들이 이제 곧 사라지고 없어지는 걸 안다면 한 번 더 눈길이 가고,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쓰다듬어 보고 싶다. 그게 적어도 내게는 영원으로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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