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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07. 2022

달항아리

유약 실금은 진행형

장인이 돌아가신 지 1년이 다되어간다.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유품들. 그리고 버려질 물들. 집사람과 처형들은 남겨진 물건들을 살펴본다. 서랍 깊은 곳에서 발견한 사진첩에 한가득 추억들이 쌓여있고, 서로 정리하면서 울다 웃고 떠들면서 다들 분주하다. 야, 그래 맞아 그땐 그랬지. 내가 그랬다고? 그때 언니 둘은 짬뽕만 시키면 싸워서 그 치다꺼리를 내가 다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충 정리가 끝나가는 동안 잠시 나도 들렀다. 구석에 잡동사니와 같이 놓인 달항아리. 이건 누가 안 가져가냐고 물었는데 그냥 폐기할 거란다. 무심코 바라본 그 달항아리가 내 눈엔 화안 하게 밝았다. 그럼 제가 가져가도 돼요? 다들 그러란다.   


달항아리 표면에 유약 밑으로 그물처림 가득한 잔주름. 뜨거운 가마에서 나오면서부터 밖의 온도차로 인해 맑은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하는 유약의 크랙은 지금도 서서히 더디지만 지속적으로 진행된단다. 허옇멀건한 달항아리를 열심히 닦으며 도공의 수고도 느껴지고, 그걸 바라보면 넉넉해지는, 특히나 밤에 달빛을 받으면 더욱 은은하게 동기 상응하듯 빛난다.


여전히 진행 중이란 말이 유독스럽다. 도올 선생의 얘기 중에  자연自然은 명사가 아닌 형용의 지속태란 말에 놀란다. '저절로 그러한' 자연은 변화에 따라 응하여 나타나는 자연스러움. 마치 깨달음이 어떤 경지의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라, 깨어있는 상태의 지속적인 형용인 것처럼. 달항아리의 유약 실금은 계속이다.


돌아가시기 전의 장인어른은 삶에 그렇게 애착을 보이시다가 마지막 삶의 의지의 끈을 놓고선 갑자기 돌아가셨다. 더 이상 사는 게 살아간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신 걸까? 딱히 심각한 질환도 없으셨는데 그렇게 가셨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그렇게 꽉 쥐고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 버티던 그 힘이 무너지는 건 일순간이었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고 했던가? 만족은 이미 넉넉한 줄 아는 것이기에, 그렇게 달항아리는 이보다  없음을, 더 이상 원만할  없음을 보여준다.


항아리  아가리에 얼굴을 들이밀고 아~하고 낮고 길게 소리를 낸다. 웅 하는 울림이 내 목소리와 같이 진동을 하며 섞여 분간이 안된다. 면도날조차 달빛에 무뎌지고,  항아리 남은 울림이 저 달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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