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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24. 2022

무사 희 1

궁극의 가로와 세로

우연히 들른 선배의 사진관에서 그를 만났다. 고등학교 동기라는데 처음 보는 것 같다. 같은 반을 한 적이 있는지 1학년 때 나는 반, 반 하는 식으로 서로 맞춰봐도 일치점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우리 학교엔 문과 두 반과 이과 네 반이 다였으니, 화장실 가다가도 스쳤을 작은 학교인데 얼굴이 생소하다. 아마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눈에 띄지 않았겠지. 하여튼 자세히 보니 안면이 있는 것도 같았다.


무사 희. 나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 집 근처에서 검도관을 운영하는 친구다. 보통의 체육관이 2층이든 3층이든 지상에 있는 경우가 흔한데, 그 친구는 지하에 검도관이 있었다. 전검 무예관. 실제 전투하듯이 검술을 익히자는 취지의 이름이란다. 최신 트렌드의 인테리어도 아닐뿐더러 본인 스스로 내부 장식을 꾸몄다고 한다. 그만의 독특한 철학이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싶어 물었는데, 그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됐단다.


벽에는 한문 액자가 걸려있었다. 仁者無敵.


한 번은 내게 죽도를 들어보라고 한다. 원래 운동에 소질이 없기도 하거니와 타고난 체력도 별로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손에 들고 하는 운동은 도저히 맞질 않았다. 골프가 그랬고, 테니스, 배드민턴 등등이 채 1년을 못 배우고 포기한 종목 들이다. 물론 내가 잘하질 못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손에 뭘 들고 하는 모든 게 서툴렀다. 경당 검술을 배울 때도 그랬다. 그래서 검도를 배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함 보여달라고만 했다.


시범을 보여 주는데 정말 죽도 끝의 가죽이 눈으로 보고도 눈이 못 따라갈 정도로 현란다. 설마 그걸 따라 하라는 건 아니었을 텐데 덧붙여 그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바위처럼 굳건하되 손발은 바람처럼 가볍게, 궁극의 세상은 가로 아니면 세로. 온갖 미사여구로 꾸민 말 같았다. 그리고 로세로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서 있거나 쓰러져 거나 둘 중 하나란다. 즉, 이기살았으니 세로로 서있고, 죽으면 가로로 눕는다고. 지금이 무슨 춘추전국시대도 아니고 죽기 아니면 살기라니 하면서 웃으니, 일본의 전국시대 전설적인 사무라이의 얘기란다. 그걸 가슴에 새기고 있는 무사 희는 아직도 꿈꾸는 자기만의 세상이 있구나 싶다. 이 나이에 대단하기도 하고 약간 유치하기도 했다.


근데 너, 물리학과 전공이라면서 어떻게 하다 운동을 하게 됐냐고 물었다. 대학 신입생 때 봉사하는 동아리 들었는데 그때 같이 가입한 어떤 여대생을 보고 반했단다. 차마 좋아한다는 말은 못 하고, 아는 정도로만 지내다가, 점점 걔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나중 운동엔 자신감이 붙었지만, 그녀에게 고백은 못하고 짝사랑만 했단다. 그녀의 보디가드 역할만으로도 행복하고 나름 뿌듯해했으며 만족하게 됐다고. 러나 그녀는 딴 놈한테 갔다가 실망하면 위로받으려는 듯 무사 희를 찾았다나? 그걸 다 받아주면서 끝끝내 속마음은 털어내놓지 못하고.  낭만적이네 했다.


어려서 태권도할 땐 몰랐는데, 커서 합기도 배우 재미도 있었지만 그녀라는 목적이 있었으니 더욱 실력이 금방 늘어 단증을 따게 됐고, 그 후엔 합기도의 부족함을 채우려 격투기까지 배웠다가 검도에 관심이 가서 여기까지 오게 됐단다. 단증의 합이 모두 17단이라고 하니 참 열심히 운동 하기는 했는가 보다.


여러 가지 종목을 한 이유도 재미있었다. 손을 주로 하는 종목에 발 사용하는 기술을 결합했더니 적수가 없고, 발 위주의 종목에서는 손기술을 응용했더니 나름 유용하더라면서 자신 만만한 표정이다. 공부머리라는 말도 있고, 일머리라는 말도 있지만, 운동도 운동 머리가 있는 것 같다며. 본인은 운동 머리가 있는 거 같단다. 내가 한단지보 꼴 안 난 게 다행이라고 했다. 어설프게 손발 다 쓰다가 여기선 손에 얻어터지고, 저 기선 발길질에 나가떨어진다고. 그는 그게 운동 머리의 차이라며, 몸이 반사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렇게 되고, 본인처럼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 것 아니겠냐며.


어느 날 검도장에서 보여줄 게 있다며 연락이 왔다. 늦은 밤. 텅 빈 검도관의 중앙 허공에 신문지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실로 고정시켜 신문지의 양쪽 끝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신문지면은 약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며 반긴다. 검은색 도복에 호구는 착용 없이 왼쪽 허리춤으로 칼을 매고 일어선다.  내게 몇 발작 뒤로 물러서게 하고 그는 칼집에서 칼을 빼고 든다. 집중을 하더니 기합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몸짓. 매달린 신문의 아랫단이 떨어져 나가 나풀거린다. 다시 칼을 들고 아직 매달려있는 신문지를 향해 좌우 양편으로 칼을 휘두르더니 바로 신문의 중앙을 가른다. 진검의 놀림을 처음으로 봤다. 와하며 박수를 친다. 나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한 솜씨다.


이번엔 한편에 세워진 볏단. 삼단 묶음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다시 집중을 하는 무사 희. 이번엔 몇 발작 뒤에서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며 칼을 크게 좌하향으로 휘두르고 지나간다. 이미 칼은 스쳐 지나갔고 무사 희의 자세는 볏단 건너편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여전히 서있는 볏단.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이미 베어진 짚단이 잠시 균형을 유지할 뿐이다.


무사 희는 칼을 왼손등으로 훑듯 칼집에 넣고 돌아서더니 다른 검으로 바꾼다. 이번엔 대나무다. 제자리에 서서  대나무를 한참 노려보다 칼을 빼들고 크게 휘두른다. 따학하는 소리와 함께 대나무는 두 동강 난다.


쇼는 끝났다. 좀 더 보여줄 게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단다. 실재 진검을 본 적도 없지만, 그 검술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칼을 보여달라고 했다. 조심 하라며 칼집에 넣어진 검을 내게 건넨다. 제법 무겁다. 칼을 다 빼내기엔 부담스러워 칼집에서 조금만 빼본다. 무사 희의 말에 의하면 두 칼의 모양과 용도가 다르단다. 하나는 칼의 단면이 삼각형으로 주로 베는 용도라 실전에서는 못쓰는 보여주기 식 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면이 오각형으로 실전용 진검인데 베는 용도가 아닌 쳐내거나 찍어내리는 데 더 적합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칼을 만드는 과정의 담금질과 접쇠 얘기들. 마지막엔 직접 돌가루를 손에 묻혀 칼날을 세우는 기술과 칼날의 여러 가지 물결 문양까지. 듣는 내내 내 손가락 끝에 피가 흐를 것 같다.


칼을 보기만 했어도 섬뜩하고, 비린내가 날 것 같아 현기증이 났다. 이런 일본도에 새겨진 장인의 문양을 보고 있자니 살 떨리는 긴장과 이걸 항상 품에 품고 잠을 청했을 사무라이들의 피곤함이 그리 곱진 않았다. 아니 곱다. 아니꼽다. 안이 꼬인다.

그 잔인함을 미학적으로 꾸며 자랑하는 듯하다.


무사 희는 그들의 정신적 뿌리가 결국 한반도 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나 그걸 제대로 교육 않는 우리도 반성할 부분이 있노라 한다. 특히 술 한잔 할라치면 더 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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