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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l 18. 2022

이동식 에어컨

사는 사람이 주인

형이 왔다. 집안 행사로 오래간만에 형이 왔다. 외국 거주 탓에 코로나 탓에 엄마의 근황을 궁금해하기만 할 뿐 직접 오지 못해 애만 태우던 형 마침 이런저런 상황을 맞아 드디어 휴가를 내어 엄마 집으로 다. 엄마의 이사집을 처음 방문한다. 약 보름간 머물 계획이다.


하필 한국에 온 날이 유독 습하고 더운 날씨였다. 형은 엄마 집에 온 지 단 이틀 만에 온몸에 땀띠다. 참다못한 형은 왜 에어컨을 넣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사실 2년 전부터 내가 에어컨을 달자고 엄마에게 여러 번 권했지만, 나이 든 엄마 입장에서는 선풍기로 충분하다며 한사코 반대했었다. 찬바람에 감기가 잘 걸리기도 했고, 전기료 부담도 있고, 여름 한철이라며, 한두 달만 잘 넘기면 찬바람 부는 가을이려니 하는 엄마의 논리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는 정도에서 나도 물러났던 것이다.


정황을 듣고도 형은 이건 아니지 싶었나 보다. 이삼일 엄마를 설득해서 결국 에어컨을 설치했다. 그리곤 내게 에어컨 설치 기념 겸 오래간만에 한잔 하자며 엄마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이동식 에어컨. 싸고 성능 좋고 이미 실외기 구멍까지 뚫려있는데, 이동형 에어컨이 자리 잡고 서있다. 더위에 해방감이었을까, 엄마에게 뭐라도 했다는 뿌듯함이었을까, 약간 흥분한 목소리의 형은 좋지 않냐며 내게 묻는다. 엄마는 어때? 하고 엄마 얼굴을 보니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좋단다.


커다란 배기 호스관이 베란다로 뻗어있고,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았지만 모자간의 합의려니 생각했다. 좁은 집이라면 가능한 한 바닥에 두는 물건은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고려를 해야 한다. 공간 활용도가 떨어지고, 자칫 활동공간을 더욱 줄인다.


집의 주인은 소유자가 아니라 거주자다. 타인이 보기에 뭔가 맞지 않아 보여도 불편해 보여도 그 공간에서 계속 지낼 사람이 주인이다. 거기 사는 사람이 본인에 맞게 배치하고 구성한다. 물건도 자기 편한 대로 맞추듯이 공간도 그럴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는 말들은 과잉 간섭이 될 뿐이다. 아마 형이 떠나면 엄마는 나를 부르겠다. 해결할 무엇이 내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나중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저 벽걸이로 다시 바꿔주라. 그 집에서 샀으니 다른 물건으로 바꾸자면 해줄 거 아니냐고.


천년 사찰에 새로 주지스님이 부임했다. 그는 낡은 사찰의 진입로를 넓히고, 단청을 새로 하고, 묵은 벽지를 바르는 등 대대적인 보강과 쇄신을 강조하며 수리하고 정리한다. 몇 달을 분주히 열심이다. 근처 암자에 거주하던 노승이 주지를 만나 이른다. 새로 주지스님이 오시니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그 입가 미소가 번진다. 뭐 제가 크게  것은 없고 눈에 거슬리는 거 약간씩 손보고 있습죠.


노승은 이른다. 허허, 그리 않아도 여긴 천년을 버텼네. 그리 않아서 천년이 온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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