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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l 01. 2022

기꺼이 여름

충분하고 미련 없어야

무덥고 습한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푹푹 찌는 여름. 가만있어도 흐르는 땀. 끈적는 살갗. 열대야와 모기에 시달리는 수면. 이 모든 게 여름을 지내기 힘들어하고 지치게 한다. 그래서 선선하고 시원한 가을을 간절히 바란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여름이 미울 것 같다. 짜증도 나고 불쾌지수도 높아진다. 이런 여름 시달림 후의 가을은 혹여 고맙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여름'이라면 뭔가 여름이 억울하다. 춘하추동의 사계절 변화가 당연하다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런 억지스러움으로 남겨진다면 도피하는 여름이 되어 아쉽다.


움트고 나온 새싹이 봄바람을 타고 자라나다가 하늘과 땅이 더욱 가까워져 습기와 열기가 교차하는 여름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점점 더 크고 성숙해진다. 계속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고, 바라는 목표를 향해 더욱 매진해야 할 듯하다. 그러니 가을은 안중에 없다. 한창 진도가 나가는 일이나 잘되는 사업을 갑자기 접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 무성해지고 번성해져야 할 듯한데 난데없이 가을이 온다면 그것도 용서가 안된다. 그렇다면 아직 여름인 것이다.

그렇게 계속 여름이 지속된다면, 성장이 끝없이 이뤄진다면, 좋을까? 가능하기는 할까? 이런 끝 모를 여름도 부담스럽다.

결국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든 멈추게 된다. 멈춰야 하기도 하고, 멈춰지게 되기도 한다. 주변 환경의 변화가 받쳐주지 않기도 하고, 타인의 질시와 견제에 막히기도 하고, 내부 과열로 과부하가 걸리기도 한다. 한창 자라다가 의도하지 않게 꺾이면 그게 오히려 더 크게 탈을 낸다.


마음껏 여름이어야 하고, 기꺼이 여름인 게 좋다. 더위에 몸이 알아서 '땀나는' 것은 그건 몸의 자율 반응일 뿐이다. '땀을 내는' 활동이 있어야 하고, 그 움직임이 주는 상쾌함을 느껴야 여름이다. 그런 충분함이 넉넉해지고, 더 이상 원하는 게 없을 만큼 족하고,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지 않아야 그런 쯤에 결과가 어찌 되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고 수렴이 수월하게 되는 가을맞이다.


더위를 피해 차가움으로 숨충분히 배출되지 못한 찌꺼기의 잔류물들이 가을 겨울에 남았다가 서서히 활동이 시작는 봄에 탈을 낸다. 알레르기로 아토피로 여러 가지로 반응을 남긴다. 봄의 계절성 질환은 이렇게 지금의 여름부터 시작된다.


가을 겨울 지나 간절한 봄은 이해 가는데, 봄여름 이후의 가을은 와닿지가 않았다.

발산의 여름이 수렴의 가을로 넘어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봄여름의 기운이면 관성처럼 계속 성장을 지속시키고 싶을 텐데, 무슨 이유로 어느 순간에 그만 멈추고 거둘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이만큼이면 해 볼 만큼 해봤다는 느낌, 그 정도면 이젠 그만 됐다는 느낌이 일으키는 만족이어야 멈추고 멈출 수 있기에 가을을 받아들이는 쉼을 수용하게 되는 것 같다.

꺼이 여름이다. 마음껏 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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