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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l 26. 2022

각인

감정에 새겨진

인상 찍히기는 반드시 강렬하지 않아도 생소함 그 자체로 강하게 남는다. 그게 선입관으로 남아 이미지를 다시 재설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나중 그 경험이 오류임을 알아도 생각이나 감정에 기억된 잔상까지 없애긴 어렵다. 첫인상은 광고의 선점효과처럼 인간관계에서조차 결정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첫 만남을 그만큼 신경 쓰는 게 아닐까?


신혼 살림집에 엄마를 앞세운 누나의 집들이 겸 방문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을 많이 하는 새댁의 입장에선 한 끼를 준비해 대접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오겠노라는 사람을 막을 순 없지 않나? 집사람은 고민 끝에 샤부샤부를 한다고 재료를 준비하고, 식기를 세팅해서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그리고 방문. 밑 간을 한 탕이 끓고 야채들과 고기가 담기고 익어가는 때쯤. 누나는 대뜸 이런 음식을 싫어한다고 선언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타박. 넌 이걸 음식이라고 내놓느냐는. 순식간에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기껏 준비한 음식들은 홀로 끓는 탕 속에서 둥둥 떠다녔고, 밤새 누군가는 눈물 흘리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날 원망했다. 나 또한 무안하고 정말 미안한 마음에 등을 쓰다듬기조차 한계를 느꼈다. 한편 이런 상황을 마치 시댁 적응의 통과 의례라고 생각하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러기엔 상처가 너무 깊었다. 새 가족이 만들어지고 서로가 어색해하고 힘들어하는 과정에서 보듬어 안기는커녕 위계질서인지 아님 군기잡기인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행위들은 20년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들이 내게도 악몽이니, 집사람은 오죽할까. 한 번씩 그런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나에게 원망의 눈빛이 날아올 땐 난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후 유산이 되었을 때도 힘들었겠다는 위로는커녕 엄마와 누나는 돌아가면서 집사람이 몸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핀잔. 심지어 엄마는 네 처의 임신이 거짓말 아니냐는 말까지. 이런 상황에서 이번엔 처갓집에서도 가만있질 않았다. 박서방 너도 검사를 해봐라. 요즘 무정자증도 많다는데 라는. 우리를 두고 본가와 처가의 기싸움 아닌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의  대립은 막아야 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끝이 나든 상처가 남는다.


앞뒤로 몰아세우고, 그 와중에도 孝를 무슨 의리 목숨처럼 여긴 나로 인해 집사람은 집사람 나름의 고립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위험했다. 아주 위태로웠다. 내가 아닌 주변에 의해 내 삶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상황은 나를 아직도 아랫사람으로 두려는 권력이다. 그리고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리고 와 살고자 하는 한 남자를 믿고 여기까지 온 그녀에게 미안했다.


지금도 효자 아들 노릇하려는 이들을 보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인형 놀음인지 알려주려고 해도 그 孝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 효를 강조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집안일수록 어른인 본인에게 잘하라는 무언의 강요다. 그렇게 효자노릇을 하려면 그냥 각자의 부모에게 더 충실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싶다. 효에 충실한 이들은 가부장적 인식이 깊이 내재하여 마치 조선시대의 헛선비 마냥 죽어도 그리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그렇게 효자들은 마지막까지 함께 할 동반자요 가족인 부인을 위하기는커녕, 희생 아닌 희생으로 당연지사의 틀에 끼우고 며느리가 그것밖에 못하냐는 식의 눈총을 근히 내비친다.


부인이 가족 모임을 꺼리거나 부담스러워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만 좋자고 하는 모임은 아닌가? 아직도 대가족 개념의 설정 속에서 내 체면이나 자존심을 더 내 세운 건 아닌지? 어떤 모임이 반드시 무슨 이득을 바라는 건 아니더라도, 같이 면 기분 좋고 모여서 편하다면, 누군들 다 같이 만나자는 제의에 이의를 달 수 있겠나. 허나 꺼려지고 주저하고 피하고 싶은 모임이라면 돌아볼 일이다. 그래도 가족 모임들은 계속 발생한다. 명절이 닥치고, 생일이 다가온다. 가끔은 조카의 결혼식 같은 이벤트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서로에 대한 인식 차이 속에 대소사에 참석을 바라는 것도 욕심일 텐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상대의 각인된 감정은 염두에 두질 않은 체 그저 지나간 과거려니 퉁치고 넘어가고 싶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말들이나 행동들을 얼마나 반추해 볼까? 여하튼 조카의 결혼을 핑계로 누나에게서 몇 차례 집사람과 소통을 하자는 제스처가 들어온다. 그렇게 만 두 사람. 누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같은 말 밖에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찍힌 인상은 그 어떤 말이든 또 다른 궤변의 다름 아닐 터.


상황이 변했으니 대하는 기조가 변한다면, 또 다른 상황에 다시 변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그런 변화의 기조에 가족으로서의 정이나 끈끈함이 없다면 순간 모면을 위한 임기응변일 뿐이다. 예전 받은 질문으로 '우릴 가족으로 생각하기는 하는 거야?' 햐, 이게 무슨 말 같지 않은 말가.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가족으로 받아들이긴 했나?' 참 잔인한 질문에 잔인한 답변이다.


억지 춘향 꼴로 모임에 참석하여 어색한 웃음을 나누면 다 해결됐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에 가깝다. 결국 이 상처는 몸속의 열기가 쌓여 한 번씩 올라오는 종기처럼 생뚱맞은 울컥거림의 반복이다. 집사람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는 수밖에.


첫 만남의 각인이 선입관을 만들어버리는 것처럼, 마지막 모습은 몇 년이 지나도록 고정된 인상으로 남아, 오랜만에 그를 만난다고 해도 헤어진 만큼의 세월 계산은 없다. 이제 만날 그는 과거의 현재인일 뿐이다. 그도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그리고 확인한다.

사람 참 안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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