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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ug 30. 2022

소라게

잠시 빌려 쓰는 것들

같이 달리기로 한 형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늦은 게 아니라 그가 먼저 와서 몸을 풀고 있다. 눈에 확 들어온 그의 운동화. 새로 산 신발인 듯하다.

" 운동화가 가벼워 보입니다."

" 응, 어제 새로 샀지. 신상은 아니고, 기능성 신발이라 좋네. 꼭 구름 위를 걷는 거 같아. 이것도 처음엔 좋지만 몇 개월 쓰다 보면 그 기능이 떨어지긴 하지만."

" 비싼 거에 관심이 없을 것 같더니, 그래도 보기엔 좋습니다. 그저 운동화면 아무거나 다 좋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굳이 비싼 거를 고르진 않지만, 이왕이면 편한 게 좋지. 금액이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 기능성을 갖춘 게 더 낫지."

문득 평소 그가 말한 물욕에서 벗어나자는 말이 진심일까 궁금해다. 말로만 무소유니 뭐니 해놓곤 실은 온갖 좋은 거 다 찾으면서 말로만 그런 건 아닐까?


"정말 형님이 생각하는 무소유가 뭐요?"

"네가 생각하는 무소유는 뭔데?"

"액면으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게 무소유지요. 물론 전혀 가지지 않을 순 없으니 최소한만을 소유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무소유지요. 요즘의 미니멀리즘처럼."

"그럼 소소유라고 했어야지 왜 무소유라고 했을까? 가능한 한 적게 가진다라는 의미라면 少所有라고 하지 않고 왜 무소유라고 했느냔 말이지."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뭔가 반박을 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거나 없는 상태의 무소유는 우리가 육체를 가진 이상 가능한가?  욕망의 근원에서 시작하여 이 몸이 만들어지고,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끊임없이 섭취해야 하는 생리적 한계에서 네 말처럼의 무소유는 어느 정도 가능할까?"

"그래서 욕심을 적게 하자는 의미에서 '무소유'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소유가 소유하지 않음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의 전제가 모순이지. 그러니 무소유는 소유를 하니 마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소유에 대한 집착을 말자는 뜻이 아닐까? 필요 이상의 음식을 저장하고 쌓아두고 축적한다면 소유의 범주겠지만, 먹는 음식은 잠시 내 몸을 거쳐지나 갈 뿐이니 소비라는 말이 더 맞을 듯 하지.  소화되고 소모되어 버리거든. 그래서 무소유라는 말을 다시 함 생각해보게. "


"혹시 소라게라고 들어봤지?"

"예, 요즘 애완동물로도 키운다는 그 게 종류 아닌가요?"

"그래, 참 신기하게도 집을 가지고 산다는 게야. 그것도 커 가면서  평수를 조금씩 늘려가. 대부분의 동물은 타고나거나 몸으로 만들어가면서 생존하는데, 소라게는 집을 짓는 게 아니고 찾아 쓴다는 게 특이하지.

그놈이 지금 몸에 맞는 소라껍데기를 끼고 살다가 탈피를 하면서 몸집이 커지면 더 큰 소라껍데기가 필요하지. 지금껏 몸의 일부처럼 늘 같이 옮겨 다니고 보호해주던 소라껍을 버리고 몸에 맞는 껍데기로 이사를 해야 해. 아무리 한 몸처럼 지니고 있었던 정든  집이라 해도 생존을 위해 집을 바꿔야 하지. 소라게 입장에서는 빼고 옮기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지. 그렇다고 두 채의 집을 다 가질 순 없지. 아무리 익숙해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신중하겠어? 그 소라게의 집에 대한 개념이 무소유에 가깝지 않을까?"

"비유로 말을 돌리지 말고 한마디로 말해줘요."

" 무소유는 소유를 않는다는 말보다는 이 세상 모든 게 잠시 머물다 스쳐 지나감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집착하지 않는 거지. 육체를 가진 이상 소비를 해야 함을 인정하고, 몸이 원하는 욕망을 무시할 순 없고, 최소한의 소비를 위한 소유가 필요함을 받아들이고, 가진 것들에 대한 얽매임이 없는."


더 많은 걸 얻으려 하거나 소유한 무엇을 꽉 고 놓지 않으려 하기보다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받아들이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정도라고.

그는 장난스럽게 무소유를  다르게 읽는다. 무소유는 무를 소유하는 것. 그러다 고개를 흔든다. 무의 상태를 소유함은 또 다른 소유가 될지도 모르지.

 더 생각해보라는 말이겠다. 말이란 게 드러난 그대로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고지식하다고 했던가. 아이고 참내.  가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느니, 움직이고 달리면서 그 생각의 끈을 슬슬 풀어보게."

달리기 정말 좋은 날씨다. 따로 뭐를 더 가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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